도시와 장소

경복궁

開土_getto 2016. 1. 2. 21:17

20160101. 금.

 

새해 첫날 아내와 경복궁 산책. 예년과 달리 궁궐 내부가 온통 진창에 북새통이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해서 궁궐 내 언땅이 녹아 진창인데다 관광객들로 붐비고...

 

그래도 새로 볼만한 곳으로 소주방과 건청궁이 있어 다행. 

소주방은 2011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2차 복원사업'이 최근 마무리되어 약 100년만에 본래 모습이 공개된 곳이다.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잘 알려진 궁중 부억, 곧 '소주방'은 왕의 침전인 강녕전 동쪽에 위치해 음식을 장만하던 곳으로 생물방, 외소주방, 내소주방과 같은 건물과 나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이 복원되어 있었다. 옛 사람들은 부억 이름을 짓는데도 운치와 격을 부여했다. '서물'(庶物, 여러가지 음식)을 만든다'와 '생명이 있는 식물과 동물'의 의미를 지닌다는 생물방(生物房)이라 했으니...명칭 자체에서부터 생기와 활력이 있어 이곳에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절로 건강해질 것 같다. 생물방에 궁중음식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2007년부터 공개되고 있는 건청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장소다. 원래 건청궁은 고종이 1873년에 건립해 명성황후와 기거했던 곳. 을미사변으로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근대도시 계획을 비롯해 많은 개혁정치를 펼쳤다. 이를 입증하듯 1887년에 건청궁에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가 와서 발전기를 설치해 최초로 전등이 가설되었다. 고종은 일본이 무서워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것이 아니라 친일 세력에서 벗어나 근대국가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려 했던 것이다. 명성황후 시해 현장인 복원된 안채, 곤녕합이 참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에 불까지 지른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게 한다.

 

시해터 곤녕합을 생각하며 걸음을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으로 옮겼다.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밥상지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공동기획전. 전시기획 의도를 보니 "이번 전시는 20세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한일양국 음식의 교류를 밥상중심으로 조명하는 자리'란다. 전시는 '돈까스'와 같은 일본식 서양요리가 한국식으로 정착한 경우에서부터 경계를 넘은 한일음식으로 '키무치찌개와 라멘', '조미료와 양조간장', '전기밥솥', '라면' 등 뿐만 아니라 정착과 변화를 거쳐 굳어진 한일음식인  '오뎅과 야키니쿠'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기분이 씁쓸해진다. 어떻게 된 전시가 일제강점기 이래 '입맛의 식민화'에 대한 관점과 이야기는 싹 다 빠지고 모든 것이 '한일 교류'차원에서 조명되고 있다. 이런 것이 소위 정부가 추진 중인 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인 '비정상의 정상화'겠지. 하긴 이런식으로 한일 교류의 우정을 돈독하게 해서 결국 위안부 문제 해결처럼 10억엔도 앵벌이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일본에 아부하고 대가로 얻는 외화벌이 문화 전시회. 정상적인 교류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는 '종놈'처럼 굴욕적비정상이다. 

 

속이 허한 전시회를 봤더니 시장기가 몹시 느껴졌다. 민속박물관 길 건너 아트선재 쪽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했다. 중국만두집에서 밥상지교하기로. '천진포자'에 들어가 볶음면과 만두국을 주문해 먹었다. 아내 뒤편으로 벽에 걸린 모택동 기념배지가 나를 내려다 본다.  아내와 모택동을 겹쳐 보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식사 마치고 나와 옆 가게로 가서 디저트로 츄러스와 커피 한잔.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