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캐롤

開土_getto 2016. 2. 24. 20:30

오후에 짬이 나서 벼르던 영화 한편 봤다. <캐롤>(2015).

오랜만에 인간의 사랑을 둘러싼 감정과 의식을 매우 내밀하게 보여준 좋은 영화다.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예술 영화로 분류되어 상영관이 그리 많지 않다. 하루 한차례 오후 2시 밖에 상영하지 않는 신촌 매가박스에 가서 봤다.


영화관 입장하는데 관객들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란다. 청소년관람불가. 허나 내 나이에 극장에서 신분증 보여주니 신선하다.ㅋ  영화 보고 나오면서 그러한 사회적 규범과 검열의 시선이 이 영화가 대척하고 있는 지점임을 알 수 있었다. '동성애 또는 퀴어 영화'로 비쳐진 사회적 시선을 넘어 <캐롤>은 사랑에 대한 인간 내면의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본성에 얼마나 충실하게 사랑하고 살고 있는가? 영화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스포일러낄까봐 줄거리는 패스...두 여 주인공의 내밀한 표정과 시선, 연기력이 화학적 융합과정을 거쳐 큰 여운을 남긴다. 특히 캐롤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눈빛과 손끝 터치 하나하나에 담긴 고감도 내면 연기가 절정이다. 이에 맞춰 상대역 테레즈 역의 루니 마리의 풋풋한 연기가 찰떡 궁합.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여성 각자에 부여된 여러 상징들의 배열이다. 애초 이들의 만남과 관계는 캐롤이 잃어버린 장갑을 백화점 매장 점원인 테레즈가 발견해 크리스마스 선물과 함께 배송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다가온 그녀..운명의 시작은 '발견'이다. 여기서 '장갑'은 다의적. 그것은 현실에서 안온한 삶의 외피 곧 보호막이자, 속살 또는 내면을 덮은 사회적 가림막이며 둘 사이를 매개하는 교감의 출발점이기도하다. 둘은 표피 너머 자신들의 속살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캐롤은 그녀가 입고 있는 빨간색의 옷과 매니큐어 색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여성성의 매력과 암호화된 '성 정체성'(나는 여기서 이것을 성정체성이니 뭐니 이런 말 대신에 그냥 '본성 또는 내면'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의 경계적 은유를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사진가로서 테레즈의 경우, 휴대한 카메라와 그녀가 찍은 캐롤의 사진들 역시 그녀의 '잠복된 진실'을 찾는 도구적 은유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다른 사진들과 별 다를게 없는 자신이 찍은 캐롤의 사진에 대해 다른 의미로 마주한다. 이러한 많은 은유들의 배열이 너무 아름답다.  


나는 이 영화를 동성애 영화로 보지 않는다. 철학적 화두로 다가온다.

과연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