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
0604 토.
브라이튼 마지막 날.
이제 졸업 시상식에서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연설하면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러면 런던행...
며칠 동안 그새 정들었다고 막상 떠나려니 호텔 방과의 작별이 아쉽다. 멀리 북쪽 구릉지의 주거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 고층 아파트 따위는 없다. 멀리 역으로 진입하는 다리가 마치 로마의 수로교처럼 고풍스럽다. 브라이튼은 런던에서 기차로 50여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많은 이들이 출퇴근하며 살고 있다.
1시 행사라 미리 체크 아웃하고 짐을 프론트에 맡기고 대학으로 향했다. 브라이튼 대학은 호텔에서 도보로 15~20분 정도 거리. 오랜만에 화창하고 따스한 날이다. 브라이튼에 온 이래 이런 날은 처음이다. 살짝 더워지기 시작.
1:00 거의 시간 맞춰 간 식장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행사 총괄 바네사가 앞에 예약석 마련해 놓았으니 오늘 상 수여자 부총장 옆에 앉으라고 귀뜸해준다. 서울대와 나고야대 시상식은 식순의 마지막.우리가 일본 보다 앞서 배정되었다.
내 연설의 골자는 이제 우리 인간은 역설적으로 창조적 지능이 인간 삶을 위협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인문적 성찰력이 요청되고 있다는 것. 또한 예술가들의 작업과 디자이너들이 행하는 사물과 이미지, 나아가 도시건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간 삶과 사회에 대해 성찰해야한다는 이야기. 얼마전 한국에서 치뤄진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결'을 예로 들었다. 알파고의 5전 4승. 이세돌의 1승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강조했다.
연설 도중에 청중들의 눈빛과 호응도가 온 몸으로 전해졌다. 연설 끝나고 큰 박수도 터져 나왔다. 세상이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의미있는 이야기는 세계가 서로 통하는 듯...
이어 오인환 교수와 함께 5명의 수장자에게 한명 씩 상장과 상금을 수여했다. 다음은 일본 나고야대 시상식..
수상식 끝나고 파티 때 마주치는 사람들이 연설 내용이 좋았다고 한마디씩 해준다. 특히 앤 보딩턴 학장이 시상식을 더욱 의미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조나단 우드햄 교수는 멋진 연설이었다고 브라이튼 대학 홈페이지에 게시할테니 연설문을 보내줄 수 있겠냐고..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사 뒷풀이 파티 마치고 모든 공식 일정이 드디어 끝났다. 일 잘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에 오인환 교수와 기차 시간 전까지 시내 산책. 날씨까지 좋아져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4:58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5:52 런던 도착. 빅토리아역에 용근이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함께 온 오인환 교수와는 여기서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서울에서 보기로...
일단 택시 타고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용근과 저녁식사. 그동안 음식이 별로라서 매콤한 음식 생각이 간절하다. 용근에게 먹을만한 곳 좀 찾아보라 했더니 하이드파크 서편에 한 퓨전 음식점으로 갔다. 맛이 괜찮다.
호텔로 오는 길에 왕립미술대학, 임페리얼 대학, 왕립음악대학 등을 둘러보고..옛날 뉴욕에서 석사 마칠 무렵 박사과정 알아보러 간 왕립미술대학과 부근이 오래전 기억 속에서 아스라히 되살아났다.
밤 9시까지도 훤한 대낮같아 몸은 피곤한데 날이 저물지 않는다.
런던에서의 6일간 여정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행용으로 오래된 노트북을 가져오는 바람에 블로그 업데이트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너무 힘들다. MS가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 윈도우즈 비스타를 운영체계로 사용하는 낡은 노트북이라서 플래시가 작동되지 않는다. 해서 사진 업로드를 아이폰으로 해야하는 불상사가...)
ⓒ 김민수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