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월요일 오후. 예약해둔 점검를 위해 할리 데이비슨에 다녀왔다. 오후들어 기온이 올라가 푹푹 찐다. 그래도 달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적셔 영국 출장의 여독을 씻어냈다.
도착해 금방 작업될 줄 알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무더기 교통경찰들이 정비받으러 와 시간이 좀 지체. 평소 단속당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고깝게 보던 교통경찰과 정비실 앞에서 같은 라이더로서 이런 저런 이야기..동병상련.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누군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야 한다. 말 걸어보니 단속하는 그들도 힘들단다. 그러면 같이 편해지는 방법을 찾아야...그것은 지금처럼 '규제를 위한 규제'와 '무질서한 교통문화'에서 벗어나는 것. 최소한의 규제와 자율적 문화..언제쯤이나 한국사회에 가능할런지..
작업 끝나길 기다리며 매장도 둘러보고... 벽에 붙어있는 할리 데이비슨의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할리 데이비슨은 1903년 윌리엄 할리와 아더 데이비슨이 자전거를 편리하게 탈 방법을 강구하다가 1903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최초로 경주용으로 개발에 성공, 창업했다. 해서 지금도 할리 본사는 밀워키에 위치해 있고, 이 엔진 달린 자전거가 올해까지 113년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
1차와 2차 세계대전 때 크게 성장했지만 할리 데이비슨은 1960년대 일제 저가 바이크의 도전으로 위기에 처해 1980년대 중반에 파산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절명의 위기 상황을 1989년 새 CEO가 들어서면서 역발상 전략으로 혁파해 나갔다. 그것은 일본 기업들과 달리 바이크는 달리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감성의 상징체임을 표방한 것이다. 즉 바이크는 단순히 '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기치로 자유로운 부품 튜닝에서부터 마치 승마가 지닌 의례(ritual)처럼 몸과 바이크를 통한 감성적 자아 실현을 목표로 했다.
이 결과 할리 데이비슨은 마케팅에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전세계 기업들 중 고객 충성도만으로 유지되는 극 소수의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해서 많은 할리 라이더들은 단순히 '바이크를 탄다'고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달린다'고 말한다. 할리 데이비슨의 특별한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신화는 요즘 디지털 시대에도 사그러들지 않고 더욱 강해지고 있다. 세상이 전기차와 전기바이크로 차고 넘친다해도 인간 신체의 본능적 감각이 살아 있는 한 할리 데이비슨의 신화는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줏대있는 제품 디자인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