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0922. 목.
'변덕스런 땅(Capricious Land)' 전시회(작가 김지은)이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열리고 있다(8/30~10/28).
갤러리의 육중한 철문을 힘껏 당겨 열고 들어서면 1층 전시실 정면에 레미콘이 콘크리트 폐기물을 타설하는 설치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양 벽면에는 폭파시켜 멸실되는 건물과 시멘트 공장, 산업폐기물 등이 그려진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층위를 달리한 두 가지 사실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첫째는 이 작가가 제시한 도시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레미콘이 콘크리트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폐기물을 내뱉
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레미콘이 타설해 놓은 것은 건축 자재가 아니라 덧없는 스치로폼 조각의 '부스러기'들이라는 사실.
이 작품들은 인간의 삶터로서 도시에 대해 사탕발림식 판타지를 조장하는 펌푸질을 제외하고 그 어떤 철학도 없이 오로지 먹튀 개발주의로 치닫는 '공사판 한국도시'를 강렬한 역설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뭔가를 끝없이 새로 짓고 있지만 곧 폐기될 운명의 덧없는 도시와 건축에 대하여 발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한국 도시의 정체성을 졸저 <한국도시디자인탐사>(2009)에서 '키치 도시' 혹은 '인스턴트 컵라면 도시'라 부른 적이 있다. 허기진 공복감만을 채우기 위해 급조해 소비되고 쉽게 폐기되는 컵라면처럼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덧없음...그래서 계속 짓고 부수고 또 짓고 또 부수며 또 짓고 있는 한국의 도시들.
김지은 작가는 개인전을 통해 막가파 개발주의가 부른 용산참사를 기억케 하는 '어떤 망루'(2012)를 비롯해 '폐허의 건축'(2014)에 이어 이번에 '변덕스런 땅'을 선보이고 있다.
이 모두가 한국 도시가 처한 실존적 초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상을 두고 단순히 치기어린 '변덕스런 땅'으로 보기엔 어떤 도시민들에겐 때로 엄습하는 인간적 공포의 정도가 너무 크다. 이 블로그 어디엔가 앞서 올려 놓은 글 [김재경 <MUTE 2>와 사진건축의 미학]에서 언급했듯이...
(http://blog.daum.net/gettok/37)
ⓒ 김민수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