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築
1021. 금
DDP에서 '서축(書築)' 전시회(10.10~11.09)가 열리고 있다. 실제 제목은 '한중일 로쿠스 디자인 포험 서울 [書-築]전.
입구에 들어서자 전시대에 반투명 트레이싱지에 인쇄된 길쭉한 안내문이 널려있었다. 한 장 집으려하니까 돈을 내고 사야한단다. 이런...허나 너무나 깨알같이 작은 활자체로 제작된 안내문은 눈이 아파서 사고 싶은 필요를 못느끼게 한다. 이 전시는 안내문에서부터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애시당초 없어 보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고려되지 않은 첫 인상은 나선형의 전시공간, '디자인 둘레길'을 돌며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전시는 '언어'를 다룬다고 천명하고 있었다. 읽을 수 없어 나중에 찍은 사진을 확대해 보니 깨알 같은 '불통' 안내문 속에 전시 의도가 살짝 적혀 있었다. '언어의 건축인 책과 공간의 언어인 건축을 한중일 3개국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협업하여 디지털 기술발달에 의해 책과 건축의 존재방식에 대해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이 '언어의 건축'인 것은 1960년대 일본의 스기우라 코헤이 같은 북 디자이너가 이미 오래전에 내건 화두요, 건축이 '공간의 언어'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전시를 보면서 한중일 3개국의 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을 끌어 모은 대단한 수고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 어쩌면 이토록 실존적 고민이 없이 '건축가와 북디자이너의 만남'이 이루어졌는지 의아하고 아쉽고 안타까웠다.
왜 자꾸 현실이 눈에 밟히는지 모르겠다. 요즘 갈 수록 주변에 일이 없는 건축사무소들이 늘어나고, 책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와 서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또한 한편에서는 한국 도시에 주거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이른바 '집 문제'가 사회적 이슈이지 않은가. 이렇듯 변화한 사회환경에서 건축과 책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는 둘째치고 우선 어떻게 살아남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시 '참여 작가들' 중에는 한국 건축사에서 삶의 현실과 역사의 문제를 최초로 발언하기 시작한 이른바 '4.3 그룹'의 건축가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실천하고 후진들에게 가르쳤던 '건축가의 길'이 아니라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였을까. 전시 구경하며 지나치던 사람들 중에 "이게 뭐야?"하며 의아해 수군대는 대화가 들려왔다.
오늘날 생사의 위기에 처한 한국 건축과 북디자인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며, 더구나 디지털 시대 '인포메이션 아키텍춰'(information architecture)의 기술적-인지적 고민은 고사하고, 주거와 책에 대한 실존적 삶의 문제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문화적이고 사회철학적 고민이 보이질 않는다. 이는 마치 27년전 한국 패선계에서 패션이 예술되기 위해 입지도 못하는 설치미술을 흉내냈던 '예술의상전'을 방불케 한다. 패션계에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전시행태가 오늘날 건축과 북디자인의 영역에서 뒷북치듯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예컨대 책 속에 사각형과 원형으로 구멍을 뚫거나 장정을 뒤틀리게 엮는 것이 건축과 책의 만남이란 말인가? 이는 책을 구조적으로 속을 파서 권총과 보석 등을 은닉하는 범죄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아쉽게도 출품된 대부분 많은 책들은 '북디자인'이 아니라 '오브제로서 책공예'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건축이 삶의 서사와 어긋나고, 책이 정보 아키텍춰와 커뮤니케이션의 문맥에서 탈구되어 한낱 물성적 구축의 공예품이 되어버린 '잘못된 만남'이라고 할까.
이 모두가 건축과 책의 본질은 사라지고 '융복합 내지는 만남'이란 말만 내세우면 뭔가 되는 듯 포장되는 '내용없는 환각 사회'의 병적 증세다.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던 몇몇 건축가들 마저 이런 식의 잘못된 만남에 동원되어 헷깔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러고보면 태생적으로 동대문디자인프라자, DDP와 일맥상통하는 전시인 셈이다.
ⓒ 김민수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