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이상

開土_getto 2017. 4. 17. 11:21

04.17.월.

 

오늘은 이상(李箱, 1910.9.23~1937.4.17)이 세상을 떠난 날.

그가 이 땅에 왔다 간지도 어느새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항공사 기내지<비욘드, Beyond>에서 이번 4월호 특집으로 이상을 다룬다고 원고를 청탁해 짧은 글 한편을 실었다.

 

흔히 이상은 '난해한 시인'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졸저이상평전(2012) 등을 통해 강조해왔듯이, 그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서 시를 쓴 '한국 최초의 융합 예술가'였다. 그의 실험시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현대디자인과 건축, 그리고 현대물리학 등과 공명했기에 가능했다.

 

예컨대 이상은삼차각설계도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기초해 무한 시공간으로 탈주와 '광선적 존재의 탄생'을 선언했으며(「선에관한각서」), 시와 소설에서 현대예술이 표명한 미학적 속성들, 곧 이미지의 파편화, 자유구성, 동시성, 속도감, 동역학적 형태 등의 의식을 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소설과 수필의 삽화에서 당대 미술가들도 아직 눈 뜨지 못한 '표현주의에서부터 다다(Dada)'에 이르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경관을 가로질렀다. 특히 1929년 건축잡지 『조선과건축 표지공모에서 1등을 받은 디자인은 당대 러시아 구성주의와도 조우한 희귀한 예였다. 그가 「선에관한각서1에서 선보인 100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매트릭스는 1970년 화가 김환기가 선보인 '점묘화' 이전에 그려진 최초의 사례였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이 바로 이상의 아내 변동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대를 앞질러 간 이상의 눈과 날개는 컸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총독부 건축 기수로서 권태로운 식민도시 건설에 동원되는 일 뿐이었다. 설상가상 폐결핵으로 죽음의 공포와 대면해야 했다. 이에 그는 식민지 도시근대화가 배태한 '짝퉁 근대'의 살해를 계획하고(「이상한가역반응」), 각혈하는 육신으로 실존의 땅을 '파고 또 파며' 분투적으로 질주했다.(또팔씨의출발, 8出發)

 

따라서 이상의 생애와 작품은 식민지 근대의 허구와 모순을 뚫고 새로운 세계로 치고 나가려했던 한 인간의 치열한 삶의 기록이었다. 그는 이 비밀을 밀봉한 상자(箱)를 역사의 바다에 띄워 보냈던 것이다. 먼 훗날 누군가에 의해 해독되길 염원하며...그의 작품은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의 공포와 맞장 뜬 결과였다.

 

또팔씨 이상의 80주기.

어제는 세월호 참사 3주기.

 

요즘 내게는 '이상의 시대와 세월호'가 겹쳐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와 별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주권도 상식도 모두 사라져버린 한국... 이땅에서 상식의 힘이 좌절하지 않고 분투적으로 실존의 땅을 '또파고 파야만 하는' 우리 모두는 이상의 운명과 다를바 없는 '또팔씨'들이다. 

 

아직 수습 못한 9인의 영혼이 인양된 세월호 속에 남겨져 있다. 그들의 조속한 귀환을 빌며 최후까지 진상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지길 빈다.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