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07.06.목.
통영은 강구항을 둘러싸고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도시엔 모순된 역사가 있어 갈 때 마다 씁쓸해진다.
통영시는 그동안 작곡가 故 윤이상 선생(1917-1995)을 도시마케팅 차원에서 자랑거리로 내세워왔다. 예컨대 선생의 생가 주변에 길이 790미터의 '윤이상거리'를 조성하고, 가을이면 '음악의 도시'라며 '윤이상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해 왔다. 2010년에는 도천동에 '윤이상기념관'과 테마 공원도 조성해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작 윤이상 선생은 아직까지 복권이 되지 않아 법적으론 국외 추방된 이적행위자 내지는 사상범의 위치에 있다. 과연 이 사실을 관광객들이 알고나 구경하는지 궁금하다. 국가보안법이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간첩으로 낙인 찍어 복권도 시키지 않는 분을 관광상품화한 통영시의 '놀라운 초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신기방기한 일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통영시가 왜 윤 선생의 복권을 추진하지 않는가.
선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불귀의 객이 되어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었다. 조국은 선생에 대해 그가 타던 낡은 자가용만큼도 대접해 주지 않았다. 현재 윤이상기념관 옆에는 선생이 1982년부터 1995년까지 독일에서 타던 벤츠 디젤 승용차(S클래스 300D)가 물 건너와 전시되어 있다. 이렇듯 복권도 시켜주지 않으면서 통영시가 문화관광 차원에서 선생의 단물만 빨아 먹고 있는 모순된 현실은 부끄럽고 몰염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이상 선생은 1967년 중앙정보부의 간첩단 조작사건, 이른바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루고, 1971년 추방되어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선생이 남긴 150여곡에 달하는 음악적 영감은 평소 그가 품었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그의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와 춤곡 '무악' 등에서는 한민족의 역사와 시대적 아픔을 투영시킨 거대한 거울과 같은 울림이 존재한다. 음색 하나하나에서 생생한 감정이입의 전율이 일어난다.
뉴스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첫 공식일정으로 선생의 묘소를 찾고, 통영에서 가져간 동백나무를 묘비 옆에 심고 참배했다고 한다. 고인과 가족은 물론 독일 내 선생의 제자와 지인들에게 큰 위로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인에 대한 복권 조치가 조속히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만일 아직도 조국이 그를 품을 수 없다면 그것은 윤 선생이 소망한 '나의 땅'이 헛된 꿈이며, 희망의 땅이 아님을 의미한다. 또한 윤이상의 세계적 명성과 짭짤한 관광수입은 환영해도, 그의 복권은 여전히 불가하다면 그것은 해묵은 이념 논쟁을 넘어서 몰염치의 극치인 것이다. 이제라도 통영시가 선생의 복권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참고로 동백림사건은 당시 정권 차원에서 시국 전환용으로 조작한 간첩단사건이었음이 지난 2006년에 이미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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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목) 게시한 위의 글 이후, 공교롭게 오늘(9일)자 일간지에 말문이 막히는 내용의 기고문이 실렸다.
<윤이상 생가터 없애려는 통영시 / http://v.media.daum.net/v/20170709143733256?rcmd=rn>
이 글은 2014년부터 '윤이상 생가터 지키기' 운동을 해오고 있는 강제윤 시인의 기고문으로 최근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통영시에서는 '윤이상 흔적 지우기'가 시장 주도로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윤 선생의 도천동 생가 터는 도로공사로 매몰 위기에 처했고, 그를 기리는 공원은 '윤이상'이란 이름을 지우고 '도천 테마파크'가 되었고. 선생의 명성을 팔아 건립한 520억원짜리 통영국제음악당에는 윤이상의 이름을 딴 연주홀 하나도 없고. 또한 지난 박근혜 정권 시절 '윤이상평화재단'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윤이상 콩쿠르'에 대한 국가 예산이 전액 삭감된 상태라고...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것이 선생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음악에 담았던 조국이란 말인가.
ⓒ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