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12.21.목
인생에서 가장 혹독했던 겨울은 2003년 겨울이었다.
1998년 8월 교수재임용 심사에서 연구실적을 초과해 채우고도 학술대회에서 미대 원로교수 친일행적을 언급한 괘씸죄로 부당해직되었다. 총장과 본부와 미대는 안팎으로 들끓는 철회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결자해지 차원에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일말의 양심이나 조짐 따위는 전혀 없었다. 공권력의 폭력이 있는 곳에서 늘상 그러하듯 가해자들은 '절차상 문제 없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당시 행정소송 1심에서 사법역사상 최초로 '교수재임용거부처분 취소청구'에서 승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교수재임용 심사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각하시켰고 이제 대법원 판결만 남아 있었다. 한편 소송과 병행한 복직 투쟁은 점차 관심 밖으로 벗어나고 있었고 겨우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후의 비폭력 항전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이 때 나를 지켜준 것은 학생대책위가 그려 학생회관 벽에 내건 걸개그림과 작은 천막 하나. 학생대책위와 함께 이 작은 천막에서 혹독한 두 해 겨울을 견뎠다. 그렇다고 비참하거나 절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천막에서 훗날 나올 저서 <필로디자인>도 집필하며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며칠 전에 종강하고 오래된 외장하드의 옛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그동안 손대지 못한 수많은 사진과 자료들을 보고 '김의 전쟁'을 기록으로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동문 자격으로 복직촉구 공청회에 오셔서 <서울미대 품성론>을 언급하신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께서 이 사건을 두고 '김의 작은전쟁'이란 제목을 붙여 주셨다.
<2003년 6월 12일. 걸개그림을 완성하고 참석자 전원이 서명한 후 '교수-학생 2인 연속시위'에 돌입한 출정식 장면>
이 날 학생대책위, 총학생회 학생들과 여러 교수님들이 함께 했는데 공동대책위원장으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행 선생님 그리고 현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께서 발언하신 모습.
<2003년 9월 27일에 설치한 첫번째 천막이 바람에 날라가 학생대책위가 새로 제작한 강력한 철제 천막. 노란 리본이 걸린 이 천막이 있었기에 복직의 순간을 맞을 수 있었다. 여기서 두 해 겨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