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현실 전능예술의 역설: 오타쿠 문화와 무라카미 다카시로 본 일본
ⓒ 무라카미 다카시, <탄탄보>, 보드와 캔버스에 아크릴, 2001
[일본비평 제5호], 90~125쪽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누군가가 원폭을 떨어뜨린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잘못을 범해 나라를 파괴하고 말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1. 원전사고와 아톰의 죽음
위의 말은 최근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밝힌 말이
다.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23회 카탈루냐상 시상식에서 이번 원전
사고를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이은 두번째 핵참사로 규정하
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일본인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해 일관되게
‘노’(No)를 외쳤어야 했다. 효율을 우선하는 생각에 안이하게 이끌리지
말았어야 했다.”1)
하루키의 이 말은 원자력을 쉽게 수용한 일본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자성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본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원전
사고의 진상 파악과 정확한 정보공개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무능력한 정부 대처에 마치 원자로의 연료봉이 녹아 내리듯 일본인 특유의
조율된 인내심에도 균열이 일어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로서 사태의 심각성이 앞으로 얼마나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그 여파로 이미 농수산물과 여성의 모유가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장기적으로 이웃나라 한국은 물론 지구 전체에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대로 1945년
원폭투하에 이은 두번째 핵참사에 해당한다. 여기에 문화적 관점을 추가하면,
이번 사고는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에 해당하는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동대지진은 1930년대 일본의 문화변동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일본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불안정한 사회 상황
속에서 메이지유신 이래 근대화 과정에서 비롯된 모순과 불만을 다양한
문화적 형태로 표출했었다.2) 마찬가지로 이번 원전사고의 여파는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뿐만 아니라 예술과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오타쿠(オタク) 문화의 귀추가
주목된다. 왜냐하면 오타쿠의 세계를 일컬어 누군가 “스스로 누에고치처럼 자아
낸 가상세계”3)라고 표현했듯이, 그들이 사회적 현실로부터 도피해 창조한 가상
세계의 추진체들, 즉 많은 로봇과 전함 등의 동력이 바로 이 원자력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원전사고로 인해 전후 오타쿠 문화의 상징적 물신(物神)으
로 숭배되었던 ‘원자력’이 후쿠시마 원자로처럼 노심이 녹아 버린 비극적 상황으
로 전락할 것인가?
흔히 오타쿠는 20세기 ‘영상의 세기’에 태어나 만화・애니메이션・비디오 게임에
심취한 ‘뉴타입(newtype) 인종’으로 알려져 있다.5) 이들 중 1세대
오타쿠들은 1960년대 전후 출생해 성장 과정에서 원자심장을 장착한 영원한
소년「철완아톰」(鐵腕アトム)6)과 불멸을 꿈꾸는 「우주전함 야마토」
(宇宙戰艦ヤマト)7) 등에 열광하며 자라난 세대였다. 이러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태평양전쟁의 패배에 따른 사회적
트라우마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전후 첫번째 대중적 영웅으로 성공해 일본 만화를 애니메이션 차원으로
끌어올린 아톰(<그림 1>)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피노키오와 같은 소년이
었다. 하지만 이 피조물의 위력은 엄청나 강철을 뚫을 수 있는 십만 마력짜리 원
자주먹과 제트분사엔진을 장착한 다리로 마하 5의 속도로 날아다니는 로봇이었
다. 역설적인 것은 원자심장을 장착해 탄생한 아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날
려 버린 바로 그 원자력 기술이 잉태시킨 자식이었다는 사실이다.9)
오타쿠들은 이 극소형 원자핵융합 발전기로 작동되는 아톰의 원자심장에 환호
했지만핵폐기물 처리와 방사능 유출 등의 현실적 문제점을 인식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오타쿠들이 1977년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에 열광하며
환호했던 진짜 이유는 외계인의 방사능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태평양 전쟁 중에
침몰한 전함 야마토가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부활한 전함이 아니라 전후 패전국의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희망의 추진체’로서, 또한 승리했어야 할 전쟁에 대한 속내를
표현함으로써 역사에 개입했기 때문이었다.10)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012년 환갑을 맞는 ‘아톰의 죽음’과 함께
「우주전함 야마토」 식의 내러티브에 묘한 역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외계인의 방사능 공격에 맞서 싸우는 비장하고 영웅적인 우주전함
야마토의 숙명적인 상대는 외계인이 아니라 바로 일본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앞서 하루키의 말대로 “누군가가 원폭을 떨어뜨린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잘못을 범해 나라를 파괴하고 말았다”는 말이 큰 여운이 남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 큰 변화가 예상되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재해
석이 요청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본 만화(망가), 애니메이션(아니메), 게임
등에 대한 저술과 논의는 과거 어느 때보다 양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문화 현상이 시각예술의 차원에서 함께 내밀하게 조명된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의 관련성은 일본 네오팝아트
(Neo-Pop Art) 작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등의 전시를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되고 있을 뿐 이들이 기반하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진 바가 없다.
일본 미술계에서 네오팝아트를 주도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나라 요시토모
보다 좀더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는 오늘날 일본에서 미술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특히 오타쿠 대중문화의 심리적 상황과 감각을 최대한
사유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라카미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일본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이 처한 외부적 상황과 내면의 심리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오늘날 일본 대중문화와 예술이 처한
내면 풍경을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는 실제 오타쿠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는 어떤 성장 과정과 이론적 기반으로 부각되었으며 그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렇게 구축된 무라카미의 전능한 예술이 오타쿠 문화에 대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이며,
오늘날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하 생략).... [일본비평 제5호], 90~125쪽 참고바람.
Published in <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 5 / 2011
<Abstract>
A Paradox of Impotence Reality and Almighty Art:
Japan as viewed by
Otaku Culture and Takashi Murakami
Min-Soo Kim, Ph.D
Graduate Director of Design History and Cul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inner scape of
Japanese art and popular culture inquiring Japanese Otaku
culture and pop artist Takashi Murakami's works.
Murakami is known for "a Japanese pop artist stem from Otaku."
Then, what is the meaning of Otaku in relation to Murakami?
What kind of backgrounds, strategies, tactical issues are
activated in his artworks? What is the critical meanings
of his works? What kind of connections are related between
Murakami's works and Otaku culture? Finally, what do these
inquiries denote on 'Two Lost Decades" in Japanese society
and popular culture?
Murakami was born in 1962 and grew up as the first generation
of Otaku. But his works of art differ from those of Otaku. He
crosses between the worlds of pop art and business and is
well known for his commercializing the Japanese Otaku culture
and practice. After graduation from Tokyo University of the
Arts(TUA), his experiences in New York in 1994 made him realize
how the art market works and then he utilizes his understanding
of Western art to integrate his work together with the Japanese
traditional arts like Ukiyo-e and the contemporary manga and
anime. Here he grasped that the Otaku culture was the source
of 'Japanese-ness' as an unique asset to bring about the
shock of the new. The strategy of 'POKU' which combined Pop
art with Otaku and the concept of 'Superflat' were developed.
Murakami's artworks are characterized by his quite explicit
statement, which pukes the gluttonous desire for art
marketing. Behind his entrepreneurial marches on the
contemporary art market, there has been a structural change
of governance in the art world. This is the reason why he has
been criticized as a broker or an exporter who sells products
of Otaku to the contemporary art world. on the other hand,
Murakami considers the Japanese Otaku culture as an
impotence culture. Since Japan as a country became weak
and impotent due to its defeat at the Second World War,
the Otaku culture provided a sort of psychological refuge.
So he wants to overcome its impotent culture by combining
it with Pop art. In addition to this, it is observed that he
allusively desires to put Japan into the central base by
pursuing an omnipotence in his latest works.
Atom will celebrate its 60th birthday in 2012. However, a recent
Fukushima Nuclear Accident sparked off not only 'Atom's
death' but also the death of the propellants of hope in the
Otaku culture, which helped people to escape from the
postwar impotence. In this sense, Murakami has pursued
his artworks to gain an almighty power to substitute for the
vacuum of hope even in the era of Two Lost Decades and
ever afterward. However, his entrepreneurial success seems
an incarnation of the neoliberalistic side effects that
Japanese society should overcome to live while in the
bust-up state of Japanese bubble economy.
<Keywords>
Takashi Murakami, Otaku Culture, Pop Art, Art Market, Two
Lost Decades, Neoliberalism, Bubble Economy, Fukushima
Nuclear Accident, Tetsuwan Atom, Uchusenkan Yamato,
Doraem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