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Mute2와 사진건축의 미학
ⓒ 김민수, 2011
<Mute 2: 봉인된 시간> 김재경 전시평문
한미사진미술관 / 2011.11.5~12.3.
ⓒ 김재경, 충신동 101109.14(1-1, no.8)
『Mute 2』. 지난 2000년 첫 선을 보인데 이어 김재경의 두 번째『Mute』연작이다.
이번 『뮤트 2』는 사진언어에 있어 더욱 명확하게 확장된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듯하다. 애초에 ‘뮤트’ 작업은 삼선동, 하월곡동,
옥수동, 길음동, 한남동 일대 후미진 달동네에서 출발했다. 김재경은 음영의 대조가
강한 좁은 골목길의 계단뿐만 아니라 그늘지고 습한 담벼락, 녹슨 철문, 전봇대 등을
35mm 카메라 렌즈에 담았었다. 이 흑백사진들은 앞서 개인전 『자연과 건축』(1998)이
그랬듯이, 기술적으로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포착되어 골목길에 하찮게 존재해온
삶에 대해 시선을 멈추고 주목해 보라는 묵언(黙言)의 말을 건넸다. 한편 ‘뮤트’는 또
다른 저항의 은유로도 다가왔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 도시건축의 최전방에서 마치
영화세트장 건설을 방불케 하듯, 스펙터클하게 펼쳐지고 있는 재개발 사업과 주거
약탈의 음모에 온 몸으로 맞서 오롯이 스틸 사진으로 정지시키려 했던 한 건축전문
사진가의 염원이 담긴 삶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 김재경, 명륜동-090923(2-5. no.1)
『뮤트』에는 적막한 좁은 골목길의 장소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김재경에게
‘뮤트’란 단순히 말없고 고요한 ‘침묵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소리가 잘 나던
오디오의 작동이 일시 정지된 상황을 뜻한다. 달리 말해, 사전적으로 이는 “과거에
곧 잘 말하다가 뭔가에 의해 (일시적으로) 말을 못하는 묵언(黙言) 또는 발음되지
못한 묵음(黙音)의 상황”에 더 가깝다.
『뮤트』의 언어는 새로운 도시계획과 재개발로 멀쩡히 이어져 온 장소들에 대한
실체적 경험과 삶터의 실존이 뿌리 채 뽑히고, 주거의 파괴와 약탈이 감행되어
더 이상 발음되지 못하는 한국 도시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강력한 은유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뮤트’가 처음 발표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은유의 강도가
점차 고조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용산참사를 비롯해 재개발사업과 뉴타운의
병폐가 세상에 알려질수록, 사진 속 적막감은 마치 오렌 펠리 감독의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공포감으로 엄습한다. 이러한
묵시적 공포는 기존의 삶터를 무차별적으로 갈아엎는 개발의 소음과 분진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혹은 태풍의 눈과 같은 ‘개발예정지구’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뮤트』는 조용한 침묵이 아니라 도시의 영혼과 정체성을 스스로
멸실시켜가는 한국의 도시계획과 건축적 풍경의 재고를 위한 암묵적 외침이었다.
김재경의 『뮤트 2』는 이제 우리를 새로운 구역으로 안내한다. 그는 선행 작업의
화두를 계속 밀고나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그의 작업 대상지는
삼선동, 옥수동, 한남동 등의 이전 동네들뿐만 아니라 사근동, 신당동, 현저동,
이화동, 명륜동, 중림동, 충신동, 회현동 등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그의 행로만큼이나
시선의 앵글 역시 확장되었다. 그는 기존의 35mm 카메라 대신에 노블렉스
(Noblex) 135U 파노라마 카메라를 사용해 왜곡이 없는 136도 화각으로
골목길을 길게 담아내고 있다. 2008년경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파노라마 카메라로
그는 기존의 ‘점’과 같은 이미지를 넘어서 파노라마 화각의 ‘면’으로 펼쳐진 장소성을
포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뮤트 2』는 한편의 응축된 ‘시적(詩的) 이미지’의
밀도감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소설적 서사’의 울림을 자아낸다.
이러한 울림은『뮤트 2』가 실존적이고 상징적 차원에서 장소와 시간을
어루만지는 영매(靈媒)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장소란
과거의 경험과 사건의 현재적 표현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의 현재적 표현’일지
모른다. 이 때 파노라마 화각에 포착된 골목길은 아파트공화국 서울의 도시
생활에서 과거로 묻혀 질 장소들을 현재화하고 미래에 대해 질문을 하게 한다.
예컨대 그것은 일찍이 박완서가 1960~80년대 서울의 주거환경 변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서울사람들』(1984)에서 말한 이른바 “아직도 연탄을 때는 사람들이
사는... 골목이 소삽한 동네”의 시간적 지속성을 보여준다. “(골목이 소삽한) 이런
동네는 흔히 그렇듯이 어디로 가나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다”고 했던 소설 속 장소들이
『뮤트 2』에서 고스란히 물화(物化)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김재경은 소설 속
여주인공이 “좁은 오르막길을 꼬불꼬불 휘돌면서 집집마다 대문 앞에 아가릴 벌리고
있는 쓰레기통에 진저리를 쳤다”는 실존의 장소를 보듬고 끔찍한 과거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의 현재로 재생시킨다.
ⓒ 김재경, 사근동-090924(1-3.no8)
『뮤트 2』에는 상징적 차원의 새로운 이야기도 펼쳐진다. 사진 속 골목길을 보고 있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태엽감는 새』(1994)에 등장하는 상징들이 떠오른다.
예컨대 거기에는 입구도 출구도 없이 흐름이 꽉 막힌 ‘골목길’과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등장한다. 하루키는 이 소설 속 상징들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존재이유의
상실감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다뤘다. 어떤 의미에서 『뮤트 2』도 역시 상실의 장소로서
사람이 없는 텅 빈 골목길과 장소의 은유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뮤트 2』에서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2004)처럼 빈집을 찾아 떠도는 타자화된 유령의 시선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경의『뮤트 2』의 골목길은 하루키나 김기덕의
작품에서처럼 결코 고립된 타자들의 닫혀진 공간이 아니다. 그 속에는 ‘열려진 흐름의
연속체’로 다가와 오히려 뭔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이끄는 묘한 힘이 존재한다.
『뮤트 2』의 골목길에는 얼핏 폐쇄된 듯 보이지만 미묘하게 서로 얽혀진 ‘숨길’이 존재하고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엔 후미진 골목길이 숨 쉬고 내뱉는 이른바 ‘들숨’과 ‘날숨’이
동시에 존재한다.
ⓒ 김재경, 중림동-091016(1-3.no.17)
예컨대 「중림동-091016」의 경우, 사진 왼편의 골목길은 좁은 담벼락
끝자락에 계단으로 이어진 또 다른 골목의 가능성이 보인다. 여기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보시라. 담벼락을 타고 흘러나온 시선은 오른쪽 골목길에
접어들며 시선의 흐름이 일으킨 바람 덕택에 펄럭이는 빨래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연이어 빨랫비누 냄새를 뒤로 한 관찰자의 시선은 사진의 오른쪽
담벼락을 타고 골목길로 빠져나간다. 이러한 골목길의 미묘한 숨길은「한남동-090905
(1-3.no18)」에서 정점을 이룬다. 사진 왼편의 작은 계단에서 조심스레 시작된
들숨은 화면 전면에 위치한 담벼락을 타고 돌아 오른쪽 골목길로 날숨을 뿜어낸다.
한데 긴 담벼락을 배경으로 화면 중심부에 서로 형태가 다른 의자들이 옹기종기
정겹게 늘어서 있다. 이 의자들은 플라스틱 사출의자에서부터 사무용의자, 유치원
영아의자, 식탁의자, 바둑이 회전의자에 이르기까지 표정이 다른 빈 의자들이지 않은가.
만일 오늘날 현대 건축이 새로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이 의자들만큼의 삶의 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용인할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바로 이점에서 김재경의 미학적 욕망은 단순히 건물에 종속된 ‘건축사진가’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의 행위는 적극적으로 도시에 개입하고 건축적 욕망을
발언하는 건축가의 작업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김재경의『뮤트 2』는
개념적으로 ‘건축사진’과 ‘사진건축’의 사이에서 후자의 행위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그가 도시 내부의 깊숙한 시간의 켜 속에 잠입해
삶을 이루는 생체조직의 미세한 혈관과 피부조직 밑의 ‘봉인된 시간’들을
조심스레 들춰내 기억의 장소로 새롭게 구조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 현대건축에서 시간과 기억의 단층을 재생시키려는 도시건축의 방향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최근 개장한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복원공사
과정에서 그가 작업한 한 장의 사진(『Space』201109, 81쪽)이다.
ⓒ 김재경,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리노베이션 직전의 라운지, 2011
이 사진은 원래 1971년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건축된 근대건축의 유산에 대해
어떻게 건축이 개입해야할지 모든 정보를 이미 담고 있는 ‘유전자 지도’를 방불케
한다. 그는 세월의 변형을 겪은 건축물이 어떤 구조와 질감으로 원형적 가치를
보존해 재생되고 복원되어야하는지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단서를 제공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김재경의『뮤트 2』와 사진건축의 욕망에서 타르코프스키가
영화 「잠입자」(Stalker, 1979)에서 말한 “고통 속에 탄생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사진건축가 김재경, 나는 그가 희망조차 없는 사람들을 ‘구역’으로 데려가
내면 깊숙한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우리 시대의 ‘잠입자들’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뮤트 3』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