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
09.26.수.
추석 연휴 마지막날 외교부 팀과 일본 센다이로 향했다.
오전 9:45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11:40 센다이 공항에 불과 2시간여만에 착륙했다.
1936년 김기림 선생이 경성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 관부연락선을 타고 다시 기차로 갈아탔던 멀고먼 여정을 음미하기엔 너무 짧은 비행 거리다.
한국총영사관에서 제공한 차편을 타고 시내로 가는 길은 도시의 역사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듯... 17세기 이래 쌀생산량 62만섬에서 100만섬을 자랑하던 광활한 센다이 들판 사이를 지나... 차가 병풍처럼 펼쳐진 주산 아오바야마를 배경으로 1600년 다테 마사무네가 세운 센다이 속으로 들어갔다.
시내 미야기현청사 앞에 위치한 센다이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도착해 총영사와 만나 브리핑을 들었다.
시내에서 부총영사가 안내한 음식점에서 다소 늦은 점심을 하고, 도호쿠대학으로 향했다.
도호쿠대학 교정에 들어서면서 뭔가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첫째는 대학본부 앞의 조경이 여느 일본식 정원 조경수법과 다른 모습이라는 점. 둘째는 본부 건물 앞에 중국의 대문호이자 사상가, 루쉰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는 사실. 도호쿠대학본부 앞 정원 조경은 영국식 자연주의 조경에 가까웠다. 꾸미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두어 살린 모습이 맘에 든다. 루쉰 선생의 흉상은 도호쿠대가 제3제국대학으로 설립되어 도쿄나 교토제국대학과 달리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신을 반영하는 듯 했다. 이 대학의 터가 바로 루쉰이 다녔던 센다이의학전문학교였다.
왠지 앞으로 이곳에 한중일 3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운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김기림 선생의 기념비가 들어설 자리는 루쉰 선생의 흉상 남쪽의 옛 법문학부 건물터 앞.
대학측이 제공한 몇몇 위치 중에 적합한 곳을 물색해야했다. 이리저리 둘러 보다가 마침내 한 장소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시인이자 평론가 김기림 선생은 일제강점기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도호쿠대 영문과에서 공부를 했다. <바다와 나비> 등 그가 남긴 여러 시 속에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시린 마음과 미래를 벼르는 마음과 야심찬 계획이 담겨져 있었다.
내가 일본에 간 이유는 바로 김기림 선생이 센다이에서 품었던 마음을 기념비에 담아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