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기념비
11.30.금
제막식에서 완성된 <김기림 기념비>의 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자극적인 빨간 색 제막식 배경이 처음에 몹시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념비에 새겨넣은 초승달이 되레 배경색으로 원형을 깨고 더욱 강조되어,
선생의 시 <바다와 나비> 속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구절이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옛날 선생이 품었던 시리고 벼리는 마음을 함께 품고
도호쿠대 총장을 비롯 참석자들 앞에서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나갔다.



김기림 기념비 디자인
(2018.11.30. 제막식 연설문 )
김민수
대한민국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반갑습니다. 김민수입니다.
설명에 앞서 이번 기념비 건립은 한일 양국 많은 분들의 협력과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결실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평소 저는 디자인이 마음을 담는 그릇이며, 물화 (物化 )된 마음을 세상에 전이시켜 사람들과 함께 공공의 선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기념비 디자인은 김기림 선생이 수학했던 도호쿠대학 교정에 그의 실존적 삶과 평화의 염원이 담긴 ‘영혼의 장소 ’를 조성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저는 도호쿠대 유학 시절 품었던 김기림 선생의 마음을 담아 그의 ‘영혼이 깃든 장소 ’를 조성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추진위원회와 수차례 논의 과정을 거쳐 그가 쓴 대표시 여러 편 중에서「바다와 나비 」를 선정했습니다. 「바다와 나비 」는 선생이 센다이에서 공부를 마치고 떠나던 1939 년에 쓴 시로 암울한 자신의 실존적 상황과 정세 속에서도 희망을 추구하는 의지가 잘 담겨져 있습니다.
시 속에 존재하는 디자인 유전자를 추출하기 위해 제가 해석한 김기림의 마음은 ‘시대극복의 염원 ’이며, 이를 표상하는 중요한 상징어가 바로「바다와 나비 」의 마지막 시행에 나오는 ‘초승달 ’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서글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이 대목에는 초승달이 보다 크고 밝은 만월로 향해가는 의지로서 미래를 위해 시린 마음의 칼을 벼리는 나비, 곧 김기림 자신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흑백의 석재로 두 가지 초승달이 상호작용하는 환경조형물을 디자인했습니다. 두 초승달의 상징성은 첫째 밤으로서 김기림을 둘러싼 어두운 실존적 삶이며, 둘째는 낮으로서 밝은 희망의 염원입니다.
저는 센다이의 역사가 1600 년 다테 마사무네가 세키가하라 전투 후, 이와데야마에서 센다이로 성을 옮겨 도시와 영지를 조성한데서 출발했고, 그의 문장 (紋章 )이 바로 초승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1980 년대 중반 미국 뉴욕에서 유학 시절에 우연히 NHK 채널에서 방영한 일본 사극 ‘마사무네 ’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30 여년 후인 지난 9 월 말 센다이를 첫 방문했고, 시립박물관에서 근대의 여명기에 센다이 번이 보신전쟁 (戊辰戦争 , ぼしんせんそう )에서 큰 희생을 치른 역사의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커다란 검은 돌의 초승달 형태는 바로 이곳 센다이 땅에 새겨진 도시역사를 뜻하며, 그 위에 잔다듬 기법으로 새긴 또 다른 초승달 이미지는 바로 김기림의 마음입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식민지 조선인의 시린 마음과 센다이의 아픈 도시역사가 초승달로 서로 만나 포개진 것입니다.
이런 땅의 역사에 기초해 저는 땅 위로 솟은 흰색의 담대한 대리석 기념비로 시대극복의 염원을 담고자 했습니다. 일체의 부차적 장식없이 석재 자체로 밝은 초승달을 형상화하기 위해 기념비 앞면과 뒷면 호의 지름을 달리했습니다 . 이로써 정면에서 보았을 때 기념비는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내경에 의해 자연스레 초승달 형상을 드러냅니다. 또한 기념비 상단의 경사진 지향점은 바로 왼편에 위치했던 옛 법문학부 발상지 터, 곧 선생이 실제로 영문학을 공부했던 건물터의 흔적과 맞추어져 바로 이곳에서 그가 담대하게 미래의 희망을 벼리던 장소임을 암시하게 했습니다.
기념비에 각인한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은 김기림이 그토록 갈구한 시대극복의 염원을 담기 위해 폰트 저작권에서 해방된 노토산스 (Notosans)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티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길 갈망했던 선생의 문학정신을 반영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기념비 정면에 새긴 대표시 「바다와 나비 」는 원본에 기초해 한국어와 일본어로 병기했습니다. 많은 고심 끝에 고안한 이 방법이 올해 <김대중 -오부치 공동선언 20 주년 >의 해를 맞아 한일 양국 사이의 ‘평화의 마음 ’을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표기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 K-pop 을 좋아하시는 일본인들은 각 시행을 대조해가며 한국어 공부가 가능할 것이고, 앞으로 ‘치유의 도시 센다이 ’에 조성된 코리아 둘레길과 이 김기림기념비를 보러 온 한국 관광객들도 일본어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말로 ‘사실에 입각해 해답을 구하는 태도 ’, 즉 ‘실사구시 ’(實事求是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일 과거사 난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왜곡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사구시의 정신에 있다고 봅니다. 양국의 불편한 관계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당사자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본 객관적인 사실과 정확한 판단에 기초해 해답을 얻고자 할 때만이 풀려 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제가 김기림기념비 디자인에 담고자 한 기본 철학이자 바램입니다. 이제 이 기념비를 보면서 지면의 초승달 위에 앉아 기념비에 새겨진「바다와 나비 」를 찬찬히 음미하며 김기림의 마음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어루만져보시길 기원합니다. 이로써 보신전쟁 , 곧 메이지유신 150 주년을 맞아 기념비에 새긴 김기림의 초승달이 센다이 도시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지성의 전당인 도호쿠대와 함께 동북아의 어둠을 밝히는 새롭고 참된 평화의 횃불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金起林 記念碑 デザインの哲学
金玟秀(ソウル大学・デザイン学部、教授)
1. 目的と意図
この記念碑のデザインは詩人であり、評論家である金起林が修学した東北大学の校庭に彼の実存的生き方と平和への念願を込めた「霊魂の場所」を造成することにその目的がある。そのため、単純に碑石あるいは詩碑の建立という次元ではなく、金起林先生の思いを込めて、彼の「魂が宿る場」を造成しようとした。記念碑建立委員会とは数回にわたる議論を経て、彼が書いた代表的な数編の詩の中から「海と蝶」を選んだ。「海と蝶」は金起林先生が仙台での勉強を終えた後、日本を去る1939年に書いた詩であり、暗い実存的状況と社会的情勢の中でも希望を追求する意志がよく込めまれているからである。
2. 都市歴史、場所性、象徴語の導出
研究者として私は、記念碑デザインの核心となるべきものを、詩のなかに刻まれた金起林の幾つかの思いのうち「時代克服の念願」を表象する重要な象徴語として、まさに「海と蝶」の最後の行にでてくる「三日月」と把握した。彼は言った。「やるせない蝶の腰に真っ青な三日月が凍みる。」私は、ここで出てくる三日月に、満月へと向かう意志を秘め未来のため凍みる心を抱く蝶、つまり金起林自身の心が込まれているとみた。このような分析を通じて、白と黒の石材を使い、ふたつの三日月が相互作用をする環境造形物をデザインした。ふたつの三日月が象徴するのは第一に、金起林をめぐる暗い実存的な人生であり、第二に、明るい希望の念願である。
都市仙台の歴史は1600年伊達政宗が関ヶ原の戦いの後、岩出山城から仙台城へと居城を移し、都市と領地を造成したことから始まるが、そこで彼の紋章がまさに三日月であった。近代の黎明期において仙台藩は戊辰戦争で大きな犠牲を払った。したがって大きな黒い石の三日月型はこの地に刻まれた仙台の都市の歴史を意味するものであり、その上に小たたき技法で刻んだもうひとつの三日月のイメージはまさに金起林の思いを象徴する。植民地朝鮮人の凍みる思いと仙台の痛い都市歴史が三日月として重なることを意図した。
3. 記念碑のデザイン
このような土地の歴史に基づき、地面の上にそびえ立つ白い大胆な大理石の記念碑には時代克服の念願を込めようとした。一切の副次的装飾を施すことなく、石材自体で明るい三日月を形象化するため、記念碑の表と裏の各弧は異なる直径でデザインした。従って正面から見た時、記念碑には、裏側に近づくほど小さくみえる立体物の内径によって自然に三日月の形象が表れる。また、記念碑の上部の傾いた立体的な形は、その志向点が記念碑の左側に位置する旧法文学部発祥地の場、すなわち金起林が実際に英文学を修学した建物の痕跡と合わされ、まさにこの場所にて彼が大胆に未来の希望を抱いた場所であることがわかるようにした。
記念碑に刻んだタイポグラフィーのデザインは、金起林がそれほど追い求めた時代克服の念願を込めるため、フォント著作権から解放されたノトサンス(Notosans)体を用いた。これは逆説的に朝鮮モダニティの独自的発展を求めた金起林の文学精神を反映させるためである。また、詩碑の正面に刻んだ彼の代表的な詩「海と蝶」は韓国語原本と日本語翻訳を併記した。苦心の末、考案されたこの方法こそ、今年<金大中・小渕恵三 共同宣言20周年>の年を迎え、韓日両国間の「平和の心」を込める最適の表記方法であると考えた。最近の韓国映画、ドラマ、K-popが好きな日本人は各詩の行を比べながら韓国語の勉強にもなるだろうし、今後「治癒の都市、仙台」に造成されたコリアオルレと、この金起林記念碑を見に訪れる韓国の観光客も日本語を学ぶ機会になるだろう。これこそが「事実の実証に基づく物事の真理を追究すること」つまり、「実事求是」といえるだろう。
私は韓日歴史の難題の根本的な解決策が、歪曲されがちな政治的修辞でなく、実事求是の精神にあると見ている。両国のギクシャクした関係は、当事者たちが目で見て、耳で聞き、直接触って感じる、だれもが否定できない客観的事実と正確な判断に基づいて、答えを得ようと努力する時にこそ解くことができるだろう。この点が金起林記念碑のデザインに盛り込めようとした基本哲学であり、望みである。そしてこの記念碑を見ながら、地面の三日月に腰を下ろし、記念碑に刻まれた「海と蝶」をじっくりと吟味し、金起林の思いを目で見て、多くの人々が心で感じてほしいと思う。そして戊辰戦争、また明治維新150周年を迎え記念碑に刻んだ金起林の三日月が仙台の都市歴史の傷を治癒し、知性の殿堂である東北大学と共に東北アジアの暗闇を照らす新しくも真の平和のかがり火になることを心から願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