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불
공수처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뻘짓으로 1월 3일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1차 체포 집행이 무산되었다. 시민들은 그날 이후 주말 시위 때 분노와 좌절 속에서도 집에 가지 않고 도로에 앉아 밑에서 차오르는 새벽 한기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분노를 삭이고 또 다른 염원의 끈을 이어갔다.
이에 한 작가가 한남동 눈 속에 은박지 담요를 덮고 굳어있는 한 시민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본 가장 가슴 먹먹한 그림이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격앙된 마음이 어떤 전율과 숭고함으로 승화해 분이 삭혀지는 해탈의 느낌이라고 할까.
이를 두고 누군가는 재미삼아 '키세스단'(키세스: 은박지 두른 허쉬 초콜릿)이라며, 은박지에 대한 과학적 해설까지 덧붙여 '우주전사'라 칭했다. 모든 것을 재미로 먹고 사는 이들의 눈에는 키세스단으로 보이겠지만 눈오는 새벽 한기에 자신의 몸을 아스팔트 위에 내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재미를 좋아하는 세태라 해도 그것이 그리 재미있는 일인가?
그 모습이 전해주는 것은 마치 단편소설 <등신불>에 소신공양으로 성불한 만적 스님의 등신불과 같은 뭉클함이다. 소설은 만적 스님의 등신불이 금불상으로 결가부좌한 자세 그대로 자신의 몸을 불태워 공양하고 불자들이 돈을 내 이 기적의 등신불에 금물을 입혔다고 했다.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시민들은 2차 체포 집행을 염원하며 엄동설한에 은박지를 덮고 스스로 은불상이 되어갔다.
나는 믿는다. 이러한 시민정신이 병든 한국사회를 이번에도 구해낼 것이라고..그러나 누군가의 소신공양과 희생을 재미로 먹고 사는 사회는 '끔찍한 사회'다. 최근 출시된 <오징어 게임2>를 보는 세계인의 생각은 전편과 많이 다를 것이다.
끔찍함의 일상화를 오락삼아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끔찍한 현실을 보고 있기에...
이 끔찍한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투표를 잘해야 한다. 분별력 없이 주술과 요물이 조종하는 괴물을 찍어 당선 시켜놓고 나중에 '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그날 그 새벽을 하얗게 지샌 거리 위의 시민들에게 그림을 그린 작가와 같은 마음을 보낸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
(C) 이정헌,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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