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28일. 어제 서울시가 새 브랜드를 발표했다.
"아이.서울.유'라 부르고 'I.SEOUL.U'라 표기한다고.
그런데 왜 내 눈엔 서울이 아니라 아이유가 어른거리는건가?
(사진출처: http://www.pholar.co/tag/18756?tag=%EC%95%84%EC%9D%B4%EC%9C%A0 )
이 디자인의 컨셉은 '나'와 '너' 사이에 '서울'이 있음을 알리고 서로 공존하는 서을을 의미한다고.
열정과 여유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점을 찍어 표현했고, SEOUL의 'O'에 '이응'을 결합해
세계적이면서 대한민국의 대표 도시임을 상징하자고 했다고 한다. 허나 이러한 설명은 꿈보다 해몽인 것이고...
(이미지 출처: 한겨레 10.29일자)
서울시가 언론에 제공한 위 디자인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아이'와 '유' 사이에 위치되는 '서울'과 '관련 이미지 요소들'의 조합이 전체적으로 임의적이다. 무엇보다 억지로 꾸며져 작위적이다. 이 디자인은 요즘 뭐 하나 제대로 소통되는게 없는 '불통민국'의 현실을 반영한 상징이라면 말이 된다.
좋게 보면 서울시가 밝혔듯이, '아이'와 '유' 사이에 수많은 이미지를 '개방형'으로 담을 수 있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념놀이' 차원에서나 가능하다. 현학적인 수사적 도움없이 그 자체만 보자. '아이.서울.유'는 읽혀지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는 작위적인 설명을 통해서만 발생한다.
시각적으로 'SEOUL'을 가운데 두고 서울이 'I'와 'U' 사이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개념적 도식이다. 그것은 어떤 개념을 예시하기 위해 문법을 초월해 그린 '다이어그램' 수준에서나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디자인은 '컨셉 곧 개념'을 소통가능한 언어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이번 디자인은 누군가 제안한 "너와 나 사이에 서울이 있다"는 개념을 1차원적으로 그대로 설명을 위해 예시하는 과정에서 문법과 어법도 초월해 '개념이 곧 최종결과'로 걸러지지 않고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시 브랜드 디자인은 부차적인 설명의 도움없이 일상의 언어로 시민적 긍지와 자부심의 공감대를 담아낼뿐 아니라 참신한 브랜드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번 디자인은 아직 고민해야할 부분이 엄청 많은 여러 시안들 중 하나에 불과한 '개념도' 정도로 다가온다.
디자인은 억지로 꾸미려하면 유치해진다. 디자인이 이렇듯 임의적이고 작위적인 것이라면 사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된다. 요즘 한국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에선 이런 것이 대세라고 말한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혀지는게 있다는 점이다.
기본형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예시된 적용(어플리케이션)에서 '서울 관련 이미지 요소'를 적용했을 때 난삽한 시각적 피로감 때문에 마음은 단지 활자 'I'와 'U'만 골라내서 보려 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의미가 유발되지 않을 때 우리의 눈은 일단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것부터 찾아 내려는 습성이 있다. 이것이 자연스런 마음의 작용이다. 예컨대 어느 여름날 하늘에 피어오른 하얀 뭉개구름을 보면서 우리의 눈이 뭔가 의미있는 시각 패턴을 구름에 투사(projection)하면서 뭔가 발견하려고 거듭 애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서울시 새 브랜드에서 실제로 보이는 것은 '아이'와 '유' 사이에 서울 관련 이미지 요소들이 아니라 아이유. 아이유만 눈에 들어온다. 이게 뭔가?
아이유는 좋겠다. 장기하와 교제를 시작한 기념으로 서울시가 공짜로 홍보까지 해주고 있으니. 서울시는 '아이유'를 위해 내년 예산 15억을 들여 홍보하겠단다. 서울시가 아이유 소속사로 나서겠다는건가?
서울 시장 바뀔 때 마다 내놓는 이런 식의 졸속 유치한 디자인 때문에 서울시의 브랜드 가치가 하락한다. 한번 물어보자. 과연 서울시 디자인에 철학이라는 것이 있으며 품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예컨대 '디자인서울, 세계디자인수도'를 외치며 그 생쇼와 난리부르스를 췄건만 앞서 오세훈 전임시장 때 내놓은
서울시 캐릭터 '해치'를 보라. 얘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 김민수, 2015
ⓒ 김민수, 2015
해치 캐릭터 발표하고 서울시는 홍보 전략으로 택시에까지 반강제적으로 표식을 의무화했다. 당시 벌이도 시원치 않은 영업용 택시 문짝에 해치를 돈 들여 그려넣게해서 말많은 택시기사들로부터 원성이 높았다.
그토록 엄청난 예산을 퍼부어 홍보했는데도 해치를 서울시 상징으로 여기거나 정을 나눠주는 서울 시민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건 대체 뭔가? 그것은 도시의 상징이 아니라 예산 낭비의 전시 행정일 뿐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브랜드를 괜시리 아이유에 헌정하지 말고 좀 더 신중하게 오래 남을 디자인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과거 눈요기감의 현혹하는 도시 및 공공디자인으로 대권까지 잡은 이명박 전시장처럼 눈속임식 디자인으로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살기좋은 삶터 형성을 위한 디자인의 본질에 기초해 애썼으면 좋겠다.
이미 서울은 전임 시장들의 정치공학 '쇼쇼쇼'로 '디자인 피로증의 도시'가 되어 버렸고, 먹다버린 잔해들이 도시 곳곳에 볼썽 사납게 나뒹굴고있다. 이런 도시에선 신중하지 못하고 작위적인 디자인은 독을 더하는 일이 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체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강대교 옆에 한번 가 보길 권한다.
한강 르네쌍스 계획의 일환으로 실효성도 없는 수상택시 도입했다가 녹슬어 폐기된 서울시 수상택시터미널과 수상택시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이 녹슨 고철덩어리들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누구의 잘못인가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조차 이 사회에선 무의미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말 조차 언급하길 꺼리고 싫어하는 사회이니...다만 세금을 낸 내가 잘못이라는 반성만 하게 될 뿐.
ⓒ 김민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