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잔치
2015.11.18. 수요일.
오전에 대학원 '디자인역사와 비평' 수업을 위해 '문화역서울284'에 다녀왔다.
학기말 비평 과제의 주제를 지난 주 개막한 '2015 타이포잔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서울역 일대 장소로 잡았다. 수업에서 원생들이 지난 1차 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기말 비평문 작성을 위해 함께 둘러보기로 한 것. 비평의 생명은 현장성이다.
이번 제4회 비엔날레의 주제는 <도시와 문자>. 주제 설정이나 내용면에서 지난 2013년 같은 장소에서 치뤄진 제3회 행사 보다는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회 행사의 주제, '수퍼텍스트'(Supertext)는 아쉽게도 내용이 주로 '작가주의 타이포그라피'에 치우쳐 디자인의 사회문화적 문맥이 잘 읽혀지지 않는 자족적 잔치였다. 그것은 옛 서울역사를 리모델링한 '문화역서울284'에서만 타이포그라피로 웃고 떠든 동네잔치로 끝나버린 감이 없지 않다. 애초에 주제로 내건 '수퍼텍스트'는 "시각예술과 언어예술의 중첩지대에 숨은 문학적 잠재성을 탐구"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로써 제3회 행사는 디자인이 미술과 구별되는 지점인 사회적 생산과 소비의 문화적 접점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디자인을 오히려 문학에 종속시킨 결과를 초래한 '문자 유희'가 되어 버렸다.
반면에 이번 제4회 타이포잔치는 주제 <도시와 문자>가 의미하듯 생활의 장으로서 '도시'에 서식하는 '문자' 생태계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잔치는 "결여의 도시" 큐레이터(민병걸)가 말하듯 "각기 다른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여러 작가들이 전시 주제 개념을 해석해서 포스터 연작을 만들고, 타이포그라피와 색, 형태만을 이용해 세계의 여섯도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별 전시가 진행되고, 아시아의 다양한 도시에 거주하는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라퍼들이 국가의 프레임이나 아시아의 보편성에 물음을 던지고, 그 풍경을 모아 기록하여 거대한 도시의 텍스쳐를 생성하는" 등 여러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도시와 문자>의 관계에 있어 '역사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일 <도시와 문자>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공간'에 대한 표명이 아니라 실존적 삶이 뿌리내린 현실의 장소, 곧 삶터로서 도시에 대한 견해라면, 단순히 도시문화에 존재하는 문자 생태계의 나열이 아니라 한국 도시의 시공간적 삶의 켜에 각인된 <도시와 문자>의 '역사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발언이 함께 포함되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만일 서울을 행사의 하부주제로도 내세운 '결여의 도시'로 간주한다면 그 발생학적 뿌리가 어디에 기원하고 있는지 원인 규명과 치유를 위한 철학적 고민은 물론 방향 제시도 있었어야 했다.
이러한 결여는 <도시와 문자>가 속성상 타이포그라퍼들끼리만의 미시적 활동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이른바 범주 너머의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주제임을 시사한다. 이는 그동안 도시 형성의 역사에 참여해 온 산증인으로서 시민적 주체와 더불어 또 다른 생산 주체인 건축, 환경, 조경, 공간 디자인 등과 통합적 문맥의 협업적 네트웍의 통찰력으로 조명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결여의 아쉬움은 역설적으로 행사 장소가 말해주는 바이기도 하다. 행사장 '문화역서울284'는 예전 서울역(해방전 경성역)이면서 일본의 도쿄역과 닮은꼴이다. 왜냐하면 경성역을 설계한 건축가 스카모토 야스시가 도쿄역을 설계한 다쓰노 깅고(1854~1919)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 관계를 넘어선다. '일본과 조선이 한몸으로 일왕의 신하'가 되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의 동화정책을 위한 식민도시화 과정이 도쿄역과 닮은 경성역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간의 켜 위에 형성된 서울이라는 <도시와 문자>의 관계는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우선 순위의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다.
한국 타이포그라피는 이러한 역사적 층위에 대한 관심과 연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철학과 지향점을 갖고 문자를 도시적 삶 속에서 해석해 내야할지 진지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제4회 타이포잔치는 이런 고민을 숙제로 남겼다고 본다.
ⓒ 김민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