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맞아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애쓰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삼가 조의와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그분들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민관 폭탄의거의 주역 조문기 선생(1927~2008)도 계셨다. 부민관 의거는 일제가 1945년 7월 24일 정치깡패로 일본에 빌붙어 살다가 제국의회 중의원까지 된 박춘금을 내세워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아시아 민족 분격대회'를 개최하려던 거국적 행사를 무산시킨 사건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거였다,
일제는 총후 총력항전 의식을 고취시키려고 총독과 조선군사령관 등 식민통치의 수괴들이 대거 참석하는 시국 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이에 조문기 의사는 유만수, 강윤국 등과 대회 저지를 위해 의거를 계획하고 마침내 결행해 꺼져가는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 일제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부민관 의거는 일제의 보도 통제로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가 강점기 말에 거의 소진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조문기 선생 등에게 독립운동의 공로가 인정된 것은 1990년에 이르러서였다.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1990년에 와서야 수여되었던 것이다. 이분들은 해방 후에 어려운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대부분 독립운동가와 그 직계가족들이 생활고와 수모를 겪어야 했듯이...해서 이런 말까지 생겼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
조문기 선생은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늘 애통해 하시며 "이 나라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번 삼일절은 그 말씀의 뜻이 더욱 깊이 사무친다.
삼일절은 국기 내걸고 노는 공휴일이 아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독립한 주권국가인지, 독립에의 의지와 정신을 이어받아 사람이 살만한 사회를 위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등를 성찰하고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친 분들이 지하에서 덜 억울하고 원통해 하실 것이다.
지난 2008년 2월 11일 조문기 선생의 겨례장 때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