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이상평전

이상평전: 모조 근대의 살해자 이상, 그의 삶과 예술 (그린비, 2012)

開土_getto 2013. 9. 23. 23:20

 

 

 

 

 

 

[목차]

 

 

머리말 ― 신화를 넘어서


         1장 _ 이상의 기원
         1. 최초의 페르소나, 「1928년 자화상」
         2.「1928년 자화상」과 표현주의
         3. 최초작 소설 「12월 12일」 의 시각성


2장 _ 절뚝발이의 세월
1. 사라진 출생지
2. 통인동 집으로
3. 서촌에서, 장소와 체험들
4. 경복궁 굴착소리 : 조선물산공진회와 총독부신청사 건설공사

3장 _ 절정의 여명 
1. 보성고보와 「풍경」 그림
2. 경성고공에서
3.『조선과건축』을 보며 : 표현주의에서 신건축까지

4장 _ 또팔씨의 출발 : 절정기와 좌절, 또 출발
1. 문학을 넘어서
2. 이상 시의 조감도
3. 이상한가역반응 : 직선은 원을 살해하라!
4. 삼차각설계도 : 새로운 세계·인간 선언문
5. 건축무한육면각체 : 현실과 이상(理想), 그리고 좌절
6. 오감도 : 막다른 골목에서

5장 _ 모조 근대의 초극 : 이상 시의 혁명성
1. 한국·일본 다다이즘과 이상
2. 서구 다다와 이상 시
3. 구체시와 해체미학을 넘어서

6장 _ 죽음의 질주와 또팔씨의 부활 
1. 가상성과 가상현실
2. 찢어진 벽지 위의 나비
3. 도쿄에서 나비되어
4. 디지털 시대, 또팔씨의 부활

후기 ― 오래된 미래

 

참고문헌

찾아보기 

     

 

[언론서평] 

 

[한겨레] 암호같은 시, 이상의 그림·건축에서 힌트를 얻다

등록 : 2012.12.14 20:26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65497.html

 

 

<이상 평전>
김민수 지음/그린비·1만8000원

내면세계 투영된 자화상
세계적 예술사조와 맥 닿아
건축가로서의 경험은
그의 시적 이미지 모체로

 

평전 낸 김민수 서울대교수
“총체적 시각예술 차원서 봐야
그의 삶과 작품 온전히 이해”

 

예술가 이상(1910-1937)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인가. 허깨비인가. 이 물음들은 지금도 유효하다.후대 사람들은 글보다 이미지의 기억으로 그를 호출해낸다. 그 이미지들은 대개 흐릿하고 파리하다. 조선총독부 건축기사 시절 찍은 코트 입은 그의 사진과 친구 구본웅이 그린 파이프를 문 괴팍한 기인의 풍모 등이 떠오른다. 소설 <날개>에서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서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를 되뇌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시 ‘오감도’나 ‘건축무한육면각체’ 같은 난수표 같은 시형식들을 연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식의 심도는 대개 거기까지다. 이상 일대기의 세부는 물론이고, 난해한 작품 속에 묻힌 숱한 ‘암호’들은 논란 속에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상이 19살 때 유화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자화상. 1956년 발간된 임종국의 <이상전집> 2권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다. 이상이 경성고공 졸업반이던 1928년 무렵 그린 것으로 보인다.
 

수년 동안 시각예술의 맥락에서 이상 작품을 연구해온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이상 평전>에서 세간에 주목받지 못했던 한 장의 자화상을 꺼내놓았다. 이상이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 다닐 때인 1928년 그린 이 자화상은 섬뜩하다. 왼쪽면만 빛을 잔뜩 받는 비대칭적 얼굴, 정수리는 함몰됐고, 오른쪽 눈엔 눈알이 없다. 푹 파인 눈 밑에 눈물이 흐른 흔적이 있고, 목은 잘렸으며, 그 아래엔 십자가가 그려졌다. 그는 이 자화상을 이상이 품었던 독특한 내면적 세계관을 거울 이미지로 투영한 것이며, 그의 큰 예술적 실험과 계획을 위한 일종의 첫 번째 페르소나, ‘연출된 가면’일 가능성이 크다고 풀이한다. 지은이가 이상의 내면을 추적하는 시발점으로, 이 자화상을 주목한 이유는 이상이 불과 열아홉 나이에, 자기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에른스트 키르히너 같은 당대 독일 다리파 작가 스타일의 표현주의 화풍을 이미 섭렵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노우치 요시 등 당시 일본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들과 기묘할 정도로 화풍이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세계 예술사조와 이상이 직접 접속했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것이다.

<이상 평전>에서는 이 자화상처럼 기존 문단의 이상 연구서와는 크게 다른 독해 방식을 꾀한다. 시, 산문, 소설, 지인들의 글 같은 텍스트보다, 그가 나고 자랐던 여러 장소 공간, 그가 접한 시각예술 사료들에 대한 탐색이 방향타로 작동한다. 책 전반부에서 이상이 유년기 자랐던 서울 서촌 일대의 역사 지리 공간들을 꼼꼼하게 뒤쫓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이상이 1932년 <조선과 건축>에 일어로 발표한 난해시인 ‘차8씨의 출발(且8氏의 出發)’에 대한 독특한 풀이다. 시는 "균열이들어간장가이녕의땅에 한자루의곤봉을꽂는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김 교수는 기존 문학 연구자들이 이 구절을 빌미삼아 가학적인 성교 장면을 투사하는 등 자의적 해석으로 시를 오독했다고 말한다.

 

그는 유년시절 이상의 통인동 집 근처인 경복궁 앞 조선총독부 공사장의 ‘소음’에서 그 배경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꺼낸다.보성고보를 나와 경성고공에 입학할 때까지 총독부 공사장을 지나다녔을 이상은 ‘식민지 근대 건축’의 상징 기반을 닦기 위해 1만개에 가까운 말뚝을 땅 속 깊숙이 박아넣는 항타 작업을 목격했을 것이며, 거기서 시각적·청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단언이다. “기초공사의 항타 작업처럼 … 폐허 속 진창 구덩이의 갈라진 틈바구니에 삶의 근간이 될 작은 곤봉 한 자루를 간신히 박았다는 매우 실존적인 진술”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 제목은 ‘또팔씨’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 차(且)자는 시 후반에 나오는 “또 쏜살같이 달려 또 쏜살같이 달리는 사람”이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또 ‘우’(又) 자와 같은 뜻이며, 제목도 “또-팔-사람의 출발”, 곧 ‘현실의 땅에서 분투적으로 땅을 계속 또 파려는 한 인간의 새 출발’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연작시 <오감도>가운데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시 제1호에 대한 시각도 파격적이다. 서촌 골목길을 누볐을 아이들이 친일파 윤덕영의 호화로운 별장과 이완용의 집이 있었던 인왕산 기슭 서촌의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리며 느꼈던 공포의 기억이 시의 잠재적 동기가 됐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시를 살았던 노인들 증언과 관련 신문기사 등을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도 제시한다. 이상의 제적등본 출생지인 ‘순화방 반정동’의 실제 지명은 없다는 것을 밝혀낸 것 또한 성과다.

 

 

이상이 디자인한 건축잡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1931년 이 잡지 공모전 입상작이다. 튜브나 기계부품 같은 제호 활자체에서 페르낭 레제나 르코르뷔지에 같은 서구 모더니즘 대가들의 영향이 엿보인다.
 

책에서는 뒤이어 미술·건축·디자인 등 당대 시각예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통해 이상의 작품 세계 배후를 파고들어간다. 특히 이상이 경성고공 재학시절부터 탐독했던 건축잡지 <조선과 건축>의 텍스트들을 처음으로 샅샅이 탐색한 것이 주목된다. 경성고공 스승 후지시마 가이지로가 잡지에 소개한 한스 펠치히,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 등 당대 서구 건축가들의 모더니즘 이론들을 이상이 보았을 것이며,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이 크게 영향을 끼친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시 ‘또8씨의 출발’에서 “곤봉은 사람에게 땅을 떠나는 곡예를 가르치지만”이라는 구절은 지표면 위로 기둥을 세우고 1층을 비우는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필로티’ 건축양식을 뜻하는 것으로, ‘진창 같은 현실에서 지면 위로 솟아올라 치고 올라가는 존재의 해방’을 암시한다는 풀이다. 또 ‘이상한 가역 반응’이나 ‘삼차각 설계도’ 연작시의 수열 행렬 같은 수식들은 오늘날의 디지털 신호체계와 상통할 뿐 아니라, ‘거울’ 이나 <오감도> 연작시 등은 오늘날의 가상현실 아바타에 대한 상상력까지 이미 내보였다는 점에서, 이상은 21세기 미래와 소통한 작가였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렇다면, 책에서 밝혀낸 이상 작품 세계의 고갱이는 무엇일까. 시각 예술의 총체적 시야에서 이상이 살던 당대의 예술 지형도를 재구성해본 지은이는 일제가 이식한 '모조 근대'를 살해하려는 욕망을 지목한다. 폐결핵을 앓던 이상이 말년 식민 본국의 수도 도쿄로 향했던 건 조선에 ‘모조 근대’만을 이식해온 일본이 정말 제대로 된 ‘근대’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고행길이었다. 하지만 덩치말고는 경성역과 외양이 비슷한 도쿄역이나, 서구 마천루의 옹색한 판박이인 마루노우치 빌딩에서 그는 짝퉁 근대의 이미지밖에 볼 수 없었다. 친구인 문인 김기림에게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라고 보낸 편지는 환멸의 절규였다. 방황하던 그는 불령선인으로 구금되고, 객사하는 운명을 맞는다. 지은이가 보기에, 이상은 “식민지 수도 경성의 ‘모조 근대’를 성찰하고 초극하여 당대 예술이 나아갈 세계사적 본류를 향해 죽음의 질주”를 감행했다. 이상의 삶과 작품은

단순한 시대적 불안이나 자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식민지 도시근대화의 허구와 모순을 드러낸 엄청난 사건이자 증거”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책 도처에서 문단 중심의 이상 연구에 강한 불신을 표출한다. 텍스트에 함몰되어 그를 삶과 얽힌 작품의 필연적 맥락은 제대로 캐지도 못했다는 날선 비판에 문학 연구자들이 어떤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출판사 서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이상에 대한 평전. 이상의 작품들은 그 난해함으로 인해 자의적 해석의 대상이 되거나, 심한 경우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열린 텍스트’로 간주되어 해석이 방임되기도 하였고, 그의 생애 역시 여성편력의 화신, 퇴폐주의의 전형, 식민지 수도 경성을 거니는 권태로운 산책자와 같이, ‘식민지’라는 시대적 현실과 유리된 ‘박제된’ 지식인의 모습으로 단편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책 『이상평전』은 지난 10여 년간 이상의 작품이 지닌 융합예술적인 측면과 혁명성을 연구해 온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의 김민수 교수가 이상에 대한 이러한 ‘신화’들과 대결하는 한편으로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이상의 삶과 작품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한, 이상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김민수 교수는 이상이 나고 자란 서촌 일대의 장소성, 이상이 자라면서 겪었을 경복궁 일대 도시경관의 변화 등을 꼼꼼히 재구성하고,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경험들이 이후의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경성고공 시절 이상이 당대의 세계적인 예술사조의 최첨단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추적하면서 그동안 단순히 근대 도시의 소비자로 피상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이상이 아니라, 최첨단의 건축이론을 익히고 근대도시를 설계하는 교육을 받은 도시의 생산자로서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문학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이상의 작품들을 미술, 건축, 디자인까지를 포괄하는 ‘융합예술’의 측면에서 살피고,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던 이상 초기 실험시들을 새롭게 해석해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모조 근대’ 살해의 의지를 드러내고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이상에 대한 평전. 이상의 작품들은 그 난해함으로 인해 자의적 해석의 대상이 되거나, 심한 경우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열린 텍스트’로 간주되어 해석이 방임되기도 하였고, 그의 생애 역시 여성편력의 화신, 퇴폐주의의 전형, 식민지 수도 경성을 거니는 권태로운 산책자와 같이, ‘식민지’라는 시대적 현실과 유리된 ‘박제된’ 지식인의 모습으로 단편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책 『이상평전』은 지난 10여 년간 이상의 작품이 지닌 융합예술적인 측면과 혁명성을 연구해 온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의 김민수 교수가 이상에 대한 이러한 ‘신화’들과 대결하는 한편으로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이상의 삶과 작품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한, 이상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김민수 교수는 이상이 나고 자란 서촌 일대의 장소성, 이상이 자라면서 겪었을 경복궁 일대 도시경관의 변화 등을 꼼꼼히 재구성하고,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경험들이 이후의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경성고공 시절 이상이 당대의 세계적인 예술사조의 최첨단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추적하면서 그동안 단순히 근대 도시의 소비자로 피상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이상이 아니라, 최첨단의 건축이론을 익히고 근대도시를 설계하는 교육을 받은 도시의 생산자로서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문학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이상의 작품들을 미술, 건축, 디자인까지를 포괄하는 ‘융합예술’의 측면에서 살피고,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던 이상 초기 실험시들을 새롭게 해석해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모조 근대’ 살해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이식한 ‘모조 근대’를 살해하라!
생애와 작품을 통해 재구성한 융합예술가 이상의 혁명성!


이상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이다. 기하학 용어들과 기호들이 난무하는 그의난해한 작품들, 수많은 일화를 남긴 27년의 짧은 생애와 이국에서의 요절은 그가 사망한 지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동시에 이상에 대한 정형화된 신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그 난해함으로 인해 자의적 해석의 대상이 되거나, 심한 경우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열린 텍스트’로 간주되어 해석이 방임되기도 하였고, 그의 생애 역시 여성편력의 화신, 퇴폐주의의 전형, 식민지 수도 경성을 거니는 권태로운 산책자와 같이, ‘식민지’라는 시대적 현실과 유리된 ‘박제된’ 지식인의 모습으로 단편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책 『이상평전』은 지난 10여 년간 이상의 작품이 지닌 융합예술적인 측면과 혁명성을 연구해 온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의 김민수 교수가 이상에 대한 이러한 ‘신화’들과 대결하는 한편으로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이상의 삶과 작품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한, 이상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필로 디자인』,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등의 저서를 통해 디자인에 있어서 장소성과 역사성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김민수 교수는 이상이 나고 자란 서촌 일대의 장소성, 이상이 자라면서 겪었을 경복궁 일대 도시경관의 변화 등을 꼼꼼히 재구성하고,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경험들이 이후의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경성고공 시절 이상이 당대의 세계적인 예술사조의 최첨단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추적하면서 그동안 단순히 근대 도시의 소비자로 피상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이상이 아니라, 최첨단의 건축이론을 익히고 근대도시를 설계하는 교육을 받은 도시의 생산자로서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문학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이상의 작품들을 미술, 건축, 디자인까지를 포괄하는 ‘융합예술’의 측면에서 살피고,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던 이상 초기 실험시들을 새롭게 해석해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이상이 살았던 장소성과 이상이 활동했던 시대의 예술적·지적 지형도를 재구성하면서 그의 작품 속에 일제가 이식한 모조 근대에 대한 살해 의도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상대성이론이나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최첨단의 물리학 지식들, 르 코르뷔지에의 ‘신건축’ 이론과 초현실주의와 다다와 같은 당대의 신예술 사조들을 접했고, 또한 근대적 도시의 설계자로서의 경험과 통찰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에게,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이식하고 있는 ‘모조 근대’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는 일어로 쓴 초기 실험시들에 교묘하게 그것을 살해하고 초극할 의도를 담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이상의 작품들을 식민지 지식인의 자의식 과잉이나 성에너지의 분출, 정신분석의 대상쯤으로 여기던 기존의 해석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이상 시의 일어 원문을 하나하나 꼼꼼히 해독하고 그것을 이상이 살았던 장소성과 그가 접했던 지적 배경을 기반으로 새롭게 해석해 낸 저자의 독창적인 연구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청사 신축공사와 이상의 기원

저자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한 장의 그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28년 이상이 그린 자화상(35쪽)이 그것이다. 이제까지의 이상 연구에서 이상의 회화 작품들에 대해서는 친구인 구본웅의 영향이 주로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1928년 자화상」을 통해 구본웅의 영향 이전에 이미 이상이 시각예술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한다. 1927년 구본웅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두상습작」(49쪽)과 이 자화상을 비교해 보면 훗날 야수파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구본웅은 아직 사실주의에 머물러 있는 반면, 이상의 자화상은 이미 내면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표현주의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당대 일본의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들을 「1928년 자화상」과 비교하면서, 이상의 자화상이 당대 세계적인 예술사조와 직접 맥이 닿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은 어떤 성장과정을 통해 이러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상이 나고 자란 장소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상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서촌 일대에 대한 역사적·지리적인 배경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기술한다. 우선 저자는 1987년 김윤식이 그의 『이상연구』에서 밝혔고, 2010년 4월호 『문학사상』에 이상의 제적등본이 공개되면서 입증된 이상의 출생지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 6호’에서 이상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반정동이란 지명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 직후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한 시점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지도에서도 ‘반정동’이라는 지명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반정동’이 ‘박정동’의 오기(誤記)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데 최근에 반정동이 통인동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출생지를 둘러싼 논란 보다도 이상 연구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 오류가 또 한 가지 있다. 이전의 연구(『문학사상』, 2010년 4월)에서 이미 밝혀진 대로, 이상이 백부의 양자로 입적되지 않았다는 것. 많은 연구자들이 백부에게 입양된 경험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이상의 작품과 기행(奇行)들의 중요한 배경으로 생각하면서, 자의식 과잉이나 분열증적 텍스트로 이상의 작품들을 읽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상이 백부에게 입양된 적이 없다는 이 사실은 이상 작품의 배경은 다른 곳, 이상이 자라면서 매일 보았을 서촌 일대의 장소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상, 곧 어린 해경이 6세 되던 해인 1915년 경복궁에서는 일제가 시정 5주년을 기념하여 ‘조선물산공진회’라는 거국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이제껏 조선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한 건축물과 신문물이 소개되고 있던 이 행사에 공업전습소 1기 출신으로 ‘조선 최초의 기술자 중 한 사람’인 백부 김연필과 함께 살고 있었던 이상이 구경을 가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 공진회는 그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일제는 식민통치 5년 동안 조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이 공진회를 통해 선전하고, 야만의 조선과 문명의 일본을 이항대립적으로 비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이 공진회는 이후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건립하기 위한 사전 터닦기 작업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조선총독부 신축공사는 해경의 나이 7세 때인 1916년 시작되어 1926년까지 이어졌다.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경성고공에 입학할 때까지 어린 해경은 공사장 옆을 지나다녔고, 이렇게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이 건립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은, 이후 그의 예술작업에 중요한 배경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지반공사를 위해 1만 개에 가까운 통나무를 땅에 밖아 넣는 항타 작업은 시각적인 면에서나 청각적인 면에서나 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과 훗날 건축가로서 실무 현장에서 겪은 경험이 시적 이미지의 모체로 작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팔씨’ 이상과 죽음에의 질주

이상의 대표적인 난해시 중 하나로 1932년 7월 『조선과 건축』에 일어로 발표된 「且8氏의 出發」은 “균열이들어간장가이녕의땅에한자루의곤봉을꽂는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시 전문과 시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 대해서는 119~128쪽, 241~243쪽 참조). 이 구절을 많은 이상 연구자들은 성적인 은유로 해석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시의 맥락과 상관없는 도식적이고 손쉬운 이런 독해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 구절은 “건축 기초공사의 항타 작업처럼 풀이 무성하게 자란 폐허 속 진창 구덩이의 갈라진 틈바구니에 삶의 근간이 될 작은 곤봉 한 자루를 간신히 박았다는 매우 실존적인 진술”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시는 그 제목부터가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 시의 제목 중 ‘且8氏’는 한자의 회화적 이미지에 초점을 두어 모자(且)를 쓴 눈사람(8)으로, 혹은 항문기 사디즘의 성적 이미지로, 혹은 且와 具의 유사성을 들어 이상의 친구인 구본웅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시의 내용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이 제목은 “또-팔-사람”을 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제목의 또 차(且)자는 시의 후반에 나오는 “또 쏜살같이 달려 또 쏜살같이 달려 또 쏜살같이 달리는 사람”이라는 구절에서 등장하는 또 ‘우’(又) 자와 같은 뜻으로 해석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이 시의 제목은 “또-팔-사람의 출발” 다시 말해 ‘질척거리는 현실의 땅에서 분투적으로 땅을 계속 또 파려는 한 인간의 새로운 출발’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또팔씨는 이상 자신의 은유이며 이 시를 통해서 이상은 ‘생리[각혈]하는 일에 의해 자살’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계속해서 땅을 파겠다는, 곧 식민지가 이식한 모조 근대와 부단히 싸우겠다는 스스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의지 속에서 이상은 식민 본국의 수도 도쿄로 향한다. 조선에 ‘모조 근대’만을 이식하는 일본제국주의는 제대로 된 ‘근대’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이상은 또 하나의 ‘모조 근대’만을 발견하게 된다. 도쿄역은 경성역보다 크기만 클 뿐,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고, 기대했던 마루노우치 빌딩도 상상하고 있던 이미지가 네댓 배는 훌륭하다고 느낄 정도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런 감상을 이상은 김기림에게 “기림 형, 기어코 동경 왔소. 와 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라고 적어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상은 또 하나의 ‘모조 근대’의 도시 도쿄에서 수상한 조선인으로 붙잡혀 구금되고, 그로 인해 지병이 악화되어 “앉았다 일어서듯”(오감도 「시제8호 나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 순간을 위해 그는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라는 또 한 가지의 말을 예비해 두었다. 그리고 그 종생기는 이상의 작품 속에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상 시의 혁명성과 현재성

저자는 미술, 건축, 디자인 등 총체적인 시각예술의 차원에서 보아야, 이상의 삶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상이 자신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던 『조선과 건축』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어로 발행되던 건축잡지였다. 저자는 이상이 경성고공에 다니기 시작한 무렵부터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던 시기까지 『조선과 건축』에 수록되었던 텍스트들을 모두 검토하면서, 이상이 어떤 건축사조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추적한다. 한스 펠치히, 발터 그로피우스 등의 영향과 더불어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이상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가령 「또8씨의 출발」에서 “곤봉은 사람에게 땅을 떠나는 곡예를 가르치지만”이라는 구절은 지표면 위로 기둥이 솟아올라 집이 얹어지는 르 코르뷔지에의 신건축의 양상을 드러내면서, ‘황폐한 진창과 같은 현실에서 지면 위로 솟아올라 치고 올라가는 존재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상한가역반응」의 “임의의반경의원(과거분사의시세)/원안의한점과원밖의한점을연결한직선”이라는 구절은 실제로 도식화를 하고, 그것을 엘 리시츠키의 러시아혁명 지지 포스터와 비교하는 작업을 거친 후에야 그 반역성이 드러난다는 점(205~206쪽), 「삼차각설계도」 연작시 중 「선에관한각서 2」의 암호 같은 수식들은 도식화하여 파악할 때 그 리듬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점(220~223쪽) 등, 시 한 편 한 편의 해석을 통해, 저자는 이상의 실험시 작품들이 시각예술의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열리지 않는 자물쇠로 잠겨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상이 스스로의 작품을 마치 디지털 방식으로 이미지를 처리하듯이 변형하여 새로순을 드러낸 사건인 동시에, 홀로 세계로 치고 나가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보여 준 전무후무한 사건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나, 「거울」과 「오감도」 중 「시 제8호 해부」에서 드러나는 가상현실이나 ‘아바타’에 대한 상상은 마치 그가 자신의 시대보다 오늘날과 더 소통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상이 살았던 일제강점기는 자신의 말과 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밀’이 필요했던 시대라고 말한다. 이상 역시 그가 품었던 ‘반역’의 사유를 그의 시 속에 암호처럼 숨겨 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은, 원문에 기초해 제대로 해석해 본다면 반역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는 「이상한가역반응」이나 「또팔씨의 출발」과 같은 시들이,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조선건축회 기관지 『조선과 건축』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증폭된다. 이상의 일본어가 “뱀을 잡기 위해 뱀의 말을 사용한 ‘땅꾼의 언어’”라는 것, 그리고 이때 이상의 일본어는 그야말로 뱀이 되어버린 이광수나 모윤숙의 일본어와는 근본적으로 맥락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은 이상화나 이육사처럼 드러나게 저항의식을 시에 담지는 않았지만, “비밀리에 식민지 수도 경성의 ‘모조 근대’를 성찰하고 초극하여 당대 예술이 나아갈 세계사적 본류를 향해 죽음의 질주”를 함으로써 저항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상의 삶과 작품은 식민지 도시근대화의 허구와 모순을 드러낸 사건인 동시에, 홀로 세계로 치고 나가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보여 준 전무후무한 사건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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