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그날그날

묵상

開土_getto 2015. 12. 28. 23:29

한해가 저물어간다.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의 날짜들이 마음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맘땐 고요한 침묵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침묵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번잡한 세상에선 침묵과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2009년 이맘 때 시네코드 선재에서 봤던 영화 한 편이 세상에 큰 울림을 준 적이 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의 <위대한 침묵>(2005). 

 

이 영화는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 해발 1300m에 자리잡은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로닝 감독이 수도원측에 영화촬영을 허락받는데만 16년이 걸렸는데 인공 조명없이 감독 홀로 수사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찍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 세속과 철저히 봉쇄된 수도원. 2시간 48분의 상영시간 내내 대사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수도사들의 담담한 일상 속에 빠져들어 깊은 묵상을 체험하고, 베르메르식의 담백한 영상미도 감동적이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절제의 아름다움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만나게 한다"고 극찬하기도.

 

기도하고 노동하는 등 수도원의 단순한 일상이 왜 감동을 주는 것인가? 사실 삶이란 단순한 것이며 그래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더욱 더 복잡해지고 바빠져 서로 죽여야만 살아남는 헬경쟁사회가 되었다. 여기에 디자인도 한 몫하고 있다. 디자인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삶 자체를 단순하고 의미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찍이 통일신라 때 원효가 맛보았던 '해골 속에 담긴 썩은 물'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모르고 마시면 시원하게 마실 수 있지만 알고 마시면 토해버리고 마는...  원효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따른 것이라고 했던가.

 

내년엔 연구학기를 맞아 마음의 근원을 찾아 수행하려 한다. 

 

 

 

 

 

 

 

 

 

 

<캡쳐 출전: https://www.youtube.com/watch?v=tY45g8trF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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