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있었던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에 186수 만에 불계패했다. 이에 판 벌린 구글은 '인류의 달착륙'에 비견한 역사적 사건으로 자축하고, 이9단과 지켜본 사람들은 충격에 빠지고...
패인 분석에 따르면, 일차적으로 이9단이 자만해 방심했다가 역습을 당해 흔들린 인간적 요인이 화근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패인은 연산적 추론능력에서 인간이 10수까지 앞을 볼 수 있는 반면 12수까지 내다보는 수퍼컴퓨터의 빅데이터 벽을 넘지 못한 것.
아직 4번의 대국이 더 남아 있지만 어쨌든 이번 대결은 인간적 능력의 한계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로써 구글을 앞세운 세계는 더욱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대국으로 구글이 인공지능 개발의 주도권과 상업성의 전지구적 마케팅 효과를 노렸다는 점에서 이9단의 패배가 정말로 우연한 사건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구글은 철저한 계산 아래 인공지능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냥 던진 것이 아니다. 이는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CEO 허사비스가 1승 후 짧게 밝힌 "달착륙'에 비유한 소감에서도 묻어나왔다. 그것은 계획된 섬뜩한 멘트인 것이다. 어쩌면 60여년에 걸친 인공지능의 역사적 과정을 보면 이번 알파고의 승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는게 오히려 맞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이번 대국을 인간을 제물삼아 인공지능의 시대를 활짝 열어준 사건으로 기록할 것이다.
이세돌이 안스럽고 불쌍하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아니라 빅데이터와의 싸움인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이는 일찌기 인공지능에 비관적 전망과 성찰을 내놓았던 허버트 드라이퍼스(Hubert Dreyfus)가 저서 <컴튜터가 할 수 없는 것>(What Computers Can't Do, 1972) 등에서 주장했던 입장에 근원적 도전이기도 하다. 드라이퍼스는 인간의 지능과 숙련도는 컴퓨터의 의식적인 상징적 조작 보다는 무의식적 직관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러한 무의식적 솜씨(skill)를 컴퓨터의 형식적 법칙이 결코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오늘 대국은 이러한 논리와 믿음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이 모두 부정될 수는 없겠지만...주목할 것은 이러한 균열로 인해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욱 확산되는만큼 이에 상응해 인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역시 더욱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력을 대신할 때 사라지는 사람의 직업과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나아가 인공지능이 스스로 자아를 갖게 될 때 닥칠 참사들...그것은 인간과 사회적 통제 범위 너머의 일이다. 하지만 이미 인간은 인공지능 기술이 로봇 개발과 함께 스스로 진화 발전하는 과정을 밟게끔 모든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나 제어 불가능의 세계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인공지능이 인간에 의해 자신과 사회의 강력한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황도 포함된다.
(사진 출처: 경향신문) 흑=이세돌, 백=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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