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 목.
<보그 코리아>에서 '서울로 7017'에 대해 글을 부탁.
이번 7월호에 실렸다.
<VOGUE KOREA> 7월호. 131-2쪽
서울로, 어디로?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프로젝트 ‘서울로 7017’이 드디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주변 상인들의 반대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낡은 서울역고가가 철거 대신 산책과 휴식의 장소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또한 도시산업화의 속도전 시대를 멈추고 성찰적 도시문화를 열었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서울로 7017’은 70년대 만든 고가를 ‘2017’년에 ‘17’개의 주변 도로와 연결해 ‘새로운 길’로 탄생함을 뜻한다고 한다. 5월 20일 개장한 이래 안전사고도 있었지만 2주 만에 백만의 시민이 방문했다는 긍정적인 뉴스도 들려온다.
그러나 구경꾼 숫자만으로 성공여부를 판단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로 디자인에 “역사문화를 담았다”고 하지만 도시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서울역고가 주변부의 ‘장소적 역사성’에 대한 섬세한 연결보다는 꽃과 나무를 심은 ‘정원’과 화분, 승강기, 매점, 족욕탕, 방방놀이터 등 원형 시설물들의 눈요깃감에 치중한 듯하다. 반면 서울로는 ‘서울역과 광장’ 그리고 ‘옛 한양도성 성곽과 남산’ 등 핵심 구간의 연결은 부차적으로 간주한 인상이다. 예를 들어, 다리로 이은 대우재단 건물을 통한 남산 둘레길 연결은 ‘시늉’일 뿐 엄밀히 말해 ‘길의 흐름’을 고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서울역과 일제가 한양성곽을 허물고 세운 남산육교와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에 대해 그 어떤 역사적 치유도 고려하지 않았다. 만일 장소적 역사성을 진정 고민했다면 서울로는 남산육교를 승강기가 아니라 ‘흐름의 길’로 이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도쿄역과 쌍둥이로 지어진 서울역의 ‘물신적 경관’에 대해서도 성찰과 치유책을 반영했어야 했다. 서울로는 지난 2011년 국가보훈처와 서울시가 후원해 서울역 광장에 세운 ‘강우규 의사상’과의 연결점도 없다. 이는 서울로가 1919년 신임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항일의 장소’로서 서울역 광장에 대한 고려보다는 역사를 단지 도시마케팅의 수단쯤으로 여긴 ‘타자적 시선의 계획’임을 방증한다.
만일 개선한다면 공모에서 2등한 설계안(조성룡 작)처럼 서울로 교각 상판을 다층 구조로 입체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흐름의 길’이 남산육교 옆 건물과 접점을 이뤄 서울로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는 남산과의 관계 재설정으로 남대문시장으로 보행자 유입과 상권 활성화를 크게 증진시킬 것이다. 서울역과 광장의 경우, 현재처럼 승강기와 계단이 아니라 광장과 서울역 뒤편 서부역으로 갈라져 내려가는 흐름을 둔 새로운 연결체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 광장으로 이어져 지하철 입구와 만나고, 광장의 강우규 의사상과 주변이 서울역의 물신성에 대해 ‘대척점’를 형성하도록 장소디자인 차원에서 재조직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연결체는 서울역 뒤로 돌아 보행자가 롯데마트는 물론 경의선과 KTX 플랫폼까지 갈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애초에 서울시는 2014년 12월 ‘서울역고가 국제현상설계’로 공모를 추진했다가 2015년 2월 ‘서울역고가 7017계획’으로 명칭과 지침을 변경해 언론에 발표했다. 이후 급박한 준비 기간을 거쳐 네덜란드 건축디자인 회사 MVRDV의 대표인 건축가 비니 마스의 안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MVRDV는 몇 해 전에 용산역 앞 주상복합설계안에서 뉴욕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참사 장면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설계안(The Cloud)을 내놔 ‘반인륜적’이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들에게서 서울역고가의 역사성에 대한 치열한 해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심사과정에서 서울역고가를 진지하게 해석해낸 한국도시건축가의 출품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만일 서울시가 역사를 고려했다면 이런 안들의 장단점을 꼼꼼히 살펴 최선책을 융합해내는 신중한 노력을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서울시는 깊이 있는 해석 대신에 서울역고가를 ‘빈도화지’ 삼아 족욕탕까지 갖춘 ‘유원지’를 그린 당선작을 선정했다. 더구나 기존 고가에 특별한 하중도 없는 공중정원을 꾸미는데 교각 보수비용을 당초의 2배나 증액해 600여 억 원을 투입한 것도 이해가 힘든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이 모두가 비니 마스의 지명도에 편승해 득을 보려 한 누군가의 사적 욕망의 결과라는 뒷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은 근본적인 역사적 성찰 대신에 정치공학적 야심과 도시건축과 공공디자인의 욕망이 결탁해 황금알을 낳는 ‘마술쇼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점에서 서울로는 앞서 눈요깃감 프로젝트로 진행된 청계천복원사업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역사를 빙자해 ‘역사 없는 서울로’ 이끌고 있는 이러한 ‘야심과 욕망이 어디로’ 갈지 현명한 시민적 통찰과 함께 앞서 제기한 문제점들에 대한 재고와 보완이 요청된다. (김민수 / 서울대 디자인학부 디자인역사문화전공 주임교수, <한국도시디자인탐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