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5.월.
어제 14일은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31주기.
영화 <1987>을 보고 얼마전에 사건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매서운 추위에 인적이 드문 대공분실을 돌아보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실제 현장과 영화 속 고문 장면이 겹쳐지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악명높았던 대공분실을 마치 인권의 보루인 것처럼 '경찰청인권센터'로 둔갑시켜 놓고 뭐가 그리 좋은지 메롱대는 경찰청 캐릭터 '포돌이 포순이'때문인지도.
1층과 4층의 상투적인 전시실을 지나 5층으로 올라가 고문 취조실 현장을 돌아봤다. 안내문을 보니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설립하고 2007년에 대공분실을 인권센터로 전시실을 만들고 5층 고문실을 리모델링했단다.
5층은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509호실만 제외하고 현장의 원형적 증거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특히 각 방마다 있었다는 욕조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현장인 509호실의 욕조도 원래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마치 모텔 처럼 꾸며놔서 실체를 상상치 못하게 가려놓은 인상이 짙다. 취조고문실이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은폐...
십여일전 블로그에 영화 <1987> 보고 온 날 몇 자 적었듯이 건축가 김수근의 대공분실은 권력이 시키는대로 그냥 지은 건물이 아니다. 그는 대공분실의 '공간적 기능'을 아주 꼼꼼히 치밀하게 계산해 챙겼다. 건물 뒤편의 피의자 전용 철문과 방향감각을 잃게해 공포심을 극대화한 철제 나선형 계단, 복도 양쪽의 취조실 간에 서로 볼 수 없게 문을 엇갈려 놓은 배치, 좁고 긴 창이 자아내는 심리적 압박감 등. 대공분실을 둘러보며 그가 설계해 같은 해(1976) 준공한 서울대 미대와 음대 건물의 낯익은 디테일이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문과 예술을 동일시한 위험한 멘탈의 건축가였다.
음산한 날씨에 무거운 마음으로 건물을 돌아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둔 509호실 창에 햇살이 길게 비추고 있었다. 남쪽에 높이 솟은 아파트 사이로 석양이 509호실 창 주위를 붉게 비추고 있었던 것. 마치 그의 원혼이 하늘에서 잠시 내려와 머무는 듯...
ⓒ 김민수
1976년 완공 때 대공분실은 5층이었다. 꼭대기 5층에 고문실을 두었다. 1983년 현재 모습처럼 7층으로 증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