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3.토.
아내와 저녁식사하러 한강변 레스토랑에 갔다. C19 확진자수가 약간 줄었지만 주말이라 사람이 붐비면 겁나서 나오려 했다.
다행히 실내는 휑하니 손님이 없었다. 대신에 탁트인 유리창 밖으로 빛과 선의 야경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일산으로 향하는 강변북로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불빛, 여의도에 빨간 형광 수직선의 행렬 .
서강대교 건너 빨간 수직선의 군집은 최근 세워진 여의도 파크원.
이를 굳이 역사적으로 말하면, 건축사가 찰스 젱크스가 오래전에 포스트모더니즘과 구분해 기술을 기념하는 '말기 모더니즘 (late modernism)이라 규정한 것에 해당한다. 건물 골조에 빨간색을 적용하고, 밤에 발광하는 이 건물은 일찍이 파리 퐁피두 센터와 런던 로이드사 등을 설계한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 리처드 로저스의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파크원의 건축은 그의 이름값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다.. 로저스 특유의 기술을 기념하는 하이테크 언어나 구조적 해석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것도 아니다. 하이테크적이라 하기엔 평범한 72층 철골 트러스 구조와 사각형 각 모서리에 두줄씩 빨간색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퐁피두 센터가 준공(1977)된지 어언 44년이 흘렀다. 만일 파크원이 건축가의 말대로 미래지향적 건축을 추구한 것이라면 적어도 이 시대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해석을 보여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세기가 꿈꿨던 유토피아의 신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마스크 없이 살 수 없는 지구 위기의 서막에 불과한 팬데믹 시대에, 파크원은 역설적으로 과거의 미래에 대한 복고적 향수감을 자아낸다. 미래지향적 건축를 추구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다. 이제는 외국의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에게 일감을 주려면 확실히 요구 좀 하고 돈을 썼으면 한다. 그들은 일 마치고 돌아갈 때 한국에 대해 '돈많은 호갱님들의 나라'라고 웃고 떠난다. 그들은 떠나면 그 뿐이지만 도시엔 경관이 남는다.
언론에 따르면, 파크원은 미래지향적 건축을 위해 철골 트러스 구조를 사용하고, 빨간 줄무늬 기둥은 한국 전통건축의 '단청'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의아할 뿐이다. 그것은 BTS를 두고 그룹이 아니라 솔로라 말하는 것과 같다. 단청이니 뭐니 상투적인 한국적 요소로 포장하지 말고 차라리 여의도 맞은편 강변의 한 레스토랑의 LED 사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거나, 아니면 좀 더 근원적으로 1960년대 형광등 아티스트 댄 플레빈의 미니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게 더 진솔할 듯하다.
어쨌거나 파크원은 여의도의 밤 경관에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과 같은 오래된 SF적 풍경을 그려 놓았다. 칼과 포크로 스테이크를 썰며 강건너 파크원의 빨간 광선검에 비친 레아 공주의 왼뺨을 보고 있는 나는 제다이의 기사...
미래 도시 서울의 픽쳐레스크한 밤
(사진: ⓒ 김민수,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