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평론

기생충 미술

開土_getto 2021. 3. 20. 12:30

03.20.토

 

공공미술은 비리 건축의 기생충인가?

 

LCT 특혜분양 의혹과 연루된 18억짜리 공공조형물이 논란이다. 20세기초 현대 예술이 개별 분야의 폐쇄적 한계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타파하고, '삶의 예술'을 기치로 내걸었던 모든 혁명적 시도들이 2021년 해운대 LCT에 이르러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래 미술이란 뭐 그런 것 아닌가'하고 자조감 섞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미술의 공공성 위기와 나아가 '미술의 기생충화'에 우려와 공분을 표하는 바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마야콥스키가 말한 "거리는 우리의 붓, 광장은 우리의 팔레트"라는 외침은 20세기 러시아와 서구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전이되어 현대 예술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흐름은 100여년이 지난 오늘, 해운대 경관을 사유화한 건축을 위해 "붓을 공간에 휘갈긴" 길이 약 100m의 검은 금속선 조형물에 얽힌 비리 커넥션과 리베이트 의혹 앞에서 멈춰 서 버렸다.

 

이로써 한국의 미술은 검은 연기 자욱한 1천억대 건설 도박하우스의 카드패에 그려진 그림 쪼가리에 불과한 것임을 세상에 드러내고, 정관계 비리 권력의 환금성 '대용 화폐'임을 증명하고 있다. 흔히 권력형 비리사건의 배후에 화랑과 미술시장에서 사업하는 배우자들이 연루되어 있는 공공연한 사실과 함께...

 

공공미술이 본래 목적과 취지와 달리 작가-화랑/브로커-건설사/건축주 사이의 리베이트 먹이사슬에 지배되는 미술 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조형물 자체에 집중해 보자. 조각가 파블로 레이노소(Pablo Reinoso)가 제작해 이를 판매사가 LCT에 납품한 <부산 무한선/Busan Infinity Line>의 '작품 설명문'을 들여다 보니 다음과 같았다. 

 

파블로 레이노소 Pablo Reinoso

“부산 무한선”(Busan Infinity Line) 2019년

 

작가는 상호보완적인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유기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첫 번째 축은 공공벤치로서 고안한 조각들로 미술과 디자인 간 경계에 관한 고찰이며, 두 번째 축은 식물과 강물 즉 자연에 대한 활기이고, 세 번째 축은 건축과 환경 그리고 조각을 조화시키는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그가 엘시티를 위해 제작한 부산 무한선/ Busan Infinity Line 은 이 세가지 축선을 완벽히 통합한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붓을 공간에 휘갈긴 듯 한 길이 약 100m의 검은 금속선과 프랑스 부르고뉴의 에펠탑 기단부 석재 25톤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재료의 만남을 통해 한국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작가의 높은 관심에서 출발하여 동서양의 정서적 동화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건물의 유려한 곡선을 반영하고 마주보는 바다의 파도를 연상시키는 결코 멈추지 않을 생명의 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설명문에 적시된 작가의 관심과 상관없이 실제 결과물을 놓고 볼 때, <부산 무한선>은  프랑스 조각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 1941~ )의 작품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브네가 1979년 이래 선보인 금속선 드로잉 조각, '비결정적 선'(Indeterminate Line) 연작을 100m 길이의 가래떡처럼 '비결정적으로' 늘려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설치 공간을 연결하도록 군데 군데 석재로 이어놓았다는 것 뿐. 이 저렴한 컨셉의 조형물이 18억짜리라는 사실을 브네가 알면 무척 속 쓰려할지도... 이 점에서 LCT 공공미술품 선정과정과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면면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것이 알고싶다.  

 

무엇보다 "동서양의 정서적 동화"를 위한 재료의 만남으로 "프랑스 부르고뉴의 에펠탑 기단부 석재 25톤으로 제작했다"는 설명문은 웃음을 자아낸다. 분별없는 사람들은 에펠탑 기단부 돌이 해운대에 와 있다고 마치 LCT가 파리 에펠탑인양 좋아들 하겠지만...산은 산이요, 돌은 돌일 뿐이다. 

 

또한 (LCT 건물의) "유려한 곡선을 반영하고 마주보는 바다의 파도를 연상시키는 결코 멈추지 않을 생명의 선으로 이어진다"는 마지막 대목은 "생명" 대신에 "기생"을 넣어야 제 격일 듯하다.

 

멈추지 않을 기생충 미술에 따귀를 때려라.

 

 

 

JTBC 뉴스캡처
           Exhibition view of  Sculptures on Park Avenue , New York, (2004) / 베르나르 브네, <비결정적 선>, 뉴욕 파크 에비뉴 전시 장면. (사진 출전: http://www.bernarvenet.com)
LCT 조형물, <부산 무한선>, 2019 (사진: JTBC 뉴스 캡처)
LCT 조형물, <부산 무한선> 2019, (사진: JTBC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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