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가구 교체를 위해 알아보는 중에 방배동 한샘 전시장에 들렀다. 현재 국내 가구업계 1위인 한샘은 프리미엄 고가 주방가구를 전시하고 있었다. 최근 한국에 상륙한 '이케아'가 저가 정책을 통해 1인 가구와 신혼부부를 공략하는 반면, 한샘은 중장년층을 위한 안정된 시장으로 특화해 가고 있다. 한샘의 최고가 브랜드 '키친바흐'(벤츠의 '마이바흐'를 연상시키는)의 경우 기본 세팅이 2천만원대 이상에서 시작한다. 직원 상담에 따라 디자인이 추가되면 가격은 쑥쑥 올라간다. 물론 저렴한 '유로 시리즈'도 있다.
2층 전시장 둘러보다가 한 켠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주방가구를 팔고 있는 별도의 '다다(DaDa)'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한샘 보다 더 한 가격대로 엄청나다. 가장 싼 것이 7천만원대에서부터 시작해 최고 1억 4천만원에 이르는 것도 있다. 디자인과 디테일 마감이 한샘 보다 몇 수 위가 틀림없지만 실제로 이탈리아 현지 가격이 이 정도는 아닐게다. 운송 및 관세 비용이 붙었겠지만 실구매가에 거품이 증식되었을 것이다.
왜 이런 매장을 전시장 안에 따로 두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샘이 해외 명품브랜드를 동원해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있기때문이다. 한샘의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 이는 역사적이다. 한샘은 일찍이 1980년대말 아파트 개발붐을 타고 씽크대 제작업체로 돈을 벌어 1990년대초 눈먼 시절에 현명하게 '디자인'을 컨셉으로 본격적인 '시스템 주방가구' 개발에 착수했다. 해서 1990년인가. 당시 뉴욕에 있던 내가 한샘회장 부탁으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츄리를 소개했고, 그가 디자인한 주방가구를 만들어 줏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디자인 주방가구전문사로 기반을 닦은 한샘이 이제 디자인을 깔고 '호갱 상술'로 나아가고 있는 것. 어찌 보면 스마트한 경영이고..
그러나 매장에서 억대의 이탈리아 명품 주방가구를 보여주는 것은 그 터무니없는 가격을 본 고객이 한샘 '키친바흐'에 대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인식하게 하려는 속보이는 상술인 셈이다. 이로인해 한샘은 세계 가구업계의 공룡 '이케아'의 국내 상륙에도 불구하고 별 영향을 받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이는 디자인의 성과가 아니라 국내의 잘못된 소비패턴에 편승한 결과일 뿐이다. 억대의 주방가구를 집에 들인 주부가 가정부나 도우미없이 혼자 살림할리 만무하다. 그건 살림을 위한게 아니라 과시용 전시품에 불과하다. 이는 국내 가구시장 환경이 워낙 양극화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솔직히 한샘 주방가구는 가격대비 디자인과 품질에 있어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근사한 매장까지 두고 직원들 월급주면서 물류 유통까지 해야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겠다 싶지만... 해서 우리 집은 전에도 그랬듯이 직접 디자인해 적당한 업체에 발주 제작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집 구조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직접 디자인해 주문제작하면 비용이 한샘처럼 턱없이 들지는 않는다.
물론 귀찮아서 이렇게 할 수 없는 고객들은 전시된 제품에 맞춰 상담해주는대로 구성하면 그만큼 프리미엄 가격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고... 한데 여기엔 오히려 비싸야 더 잘팔리는 호갱님들의 '허세 문화'도 한몫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정직한 가격의 좋은 디자인과 품질의 제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망한다. 해서 디자인은 프리미엄을 얹어 고가에 제품 팔아먹는 마케팅 수단밖에 될 수 없다. 이런 식의 디자인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거품을 빼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디자인과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라는 '호갱 사회'가 그러한 제정신있는 사회를 원치 않게끔 정치-경제-언론이 담합해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다.
한샘 '키친바흐'
이탈리아 주방가구 'DaDa' 매장.
ⓒ 김민수,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