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평론

복면

開土_getto 2015. 12. 17. 12:35

복면가왕, 복면회장님, 복면필진이 집필한 <한국사> 국정교과서...가히 복면이 대세인 사회다.

하지만 누구는 복면을 마음껏 쓰고 뭔짓을 해도 상관없고 일반 시민이 거리에서 복면을 쓰면 불순분자로 찍혀 큰일난다. 새로운 갑질 사회의 도래인가?


헝겊으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가리는 용도의 '복면'은 흔히 서양에서 '마스크'(mask), 한국에선 '가면'이나 '탈'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이 디자인 역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적 상징에 해당한다. 복면 혹은 가면은 선사시대 이래 주술적 염원의 의식용에서부터 비밀결사용, 부장용, 호신 및 전투용 투구 등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떼의 풀치넬라 또는 한국 봉산탈춤의 말뚝이와 취발이 등처럼 익살과 현실풍자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어떤 경우 그것은 베니스 가면축제처럼 자신을 숨기고 성적 욕망을 펼치는 자유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베니스는 선조들이 13 세기 무렵 공식화한 이 축제 덕에 아직까지 관광수입으로 먹고 살고 있다. 한국 고전에서 복면은 '일지매' 등처럼 의인 또는 정의의 사도로 묘사되었던 바, 이러한 맥락은 헐리웃 영화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나아가 복면은 영화 '마스크'(The Mask, 1994)에서 처럼 초인적 불사신의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다. 

 

현대 디자인의 문맥에서 복면이 중요하게 부각된 곳은 패션 쪽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 김성복 교수에 따르면, 현대 패션에서 복면은 1930년대 무렵 초현실주의패션에서부터 등장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1924년 앙드레 부르통의 1차 선언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발생 원인과 배경은 합리적 과학과 이성의 귀착점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대량살육의 참상을 초래한 1차세계대전과 이로인한 서구문명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는 여러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초래했는데 이 중에서 초현실주의는 문명 자체를 부정한 '다다'의 뒤를 이어 이성의 통제를 거부하고 일체의 선입관을 배제한 사고를 포착하고 솔직하게 의식의 흐름을 걸러내지 않고 자동으로 기록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처럼 현대 패션에서 복면과 관련한 중요한 전시가 몇해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MA)에서 있었다. 2012년 MMA 코스츔 인스티튜트(Costume Institute)에서 <스키아빠렐리와 프라다: 불가능한 대화>라는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20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패션디자이너 엘사 스키아빠렐리(1890~1973)와 미우치아 프라다(1949년생)의 연출된 '가상의 대담'을 통해 서로 같으면서 다른 차이를 보여준 전시였다. 당시 연구년 기간 중 방문학자로 하버드대에 가있던 나는 이 전시를 보러 뉴욕에 잠시 다녀왔다.  

 

스키아빠렐리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고 프라다는 90년대 현대패션을 표상하는 인물로 이 둘의 활동 시기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 전시는 '불가능한 대화'로 이들이 접점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창조적 전략을 통해 당대의 지배적인 예술적, 문화적, 정치적 지향점을 분명히 했지만, 철학과 방법론에 있어 현저히 다른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들은 유행을 쫓는 패션 규범을 거스르고 저항하면서도 옷의 실재성과 실용성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패션의 역사에서 귀감이 되었다.

 

전시 방법도 신선했다. 이들의 옷이 각기 안전하게 유리 케이스에 전시되어 있었다. 한데 전시장 벽면을 거울로 처리해 이들이 해석해 보여준 시대의 거울에 비춘 '여성성'을 암시하는 듯 했다. 소재적으로도 유리와 거울은 스키이빠렐리의 초현실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프라다가 즐겨 사용한 현대 테크놀로지의 질감적 속성과도 잘 어울리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이 전시에선 또 다른 매개체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복면이었다. 전시된 옷의 마네킹들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이 복면들은 귀도 팔라우가 디자인했는데, 스키아빠렐리 옷의 마네킹에는 초현실주의 복면을 씌웠고, 프라다 옷의 마네킹에는 기계 이미지의 로봇 복면을 씌워 옷과의 접점을 마련한 것이 재미있었다. 옷과 함께 복면도 두 디자이너가 포착하려 했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것이다. 


창조적으로 몸부림쳐도 힘든 세상이다. 이처럼 복면으로 할 일도 많건만 복면을 뒤집어 쓰고 왜곡된 <역사> 국정교과서나 집필하고 갑질하고 장난질치지 말기바란다.

 

 

김민수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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