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2.일
생일에 본 영화 <컨택트, 2016>.
SF 영화로 소개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이 영화는 내게 SF 보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의미로 더 깊이 다가온다. 사실 이 영화의 의미는 원제와 원작소설 제목에 있다. 영화는 원제가 <어라이벌, Arrival>. 번역하면 '당도(當到)'로, 과학소설가 테드 챙(Ted Chang)이 쓴 단편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기초한다.
한국에서 이 영화 제목이 '컨택트'로 개봉하는 바람에 20년전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 <컨택트, 1997>의 이미지와 겹쳐진 것은 싸구려 홍보 컨셉이 빚어낸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원제 그대로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어라이벌>은 인생에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특히 오늘 당도한 내 생일을 맞아 그렇지 않아도 한 살 더 '나이들어 감'(aging)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등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늙어간다는 것은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시간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끝을 향해가는, 즉 과거의 지나간 시간 이후 끝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두려운 시간에 대한 경험이다.
그러나 영화는 대사 중에 '시간은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 경우 시간은 단선적인 꼬치에 꿰어진 선형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순차적으로 금이 그어진 한 쪽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는 SF나 현대물리학의 과학 이전에 본질적으로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시간개념이기도 하다. 고등 과학의 세계는 철학과 만난다.
나이들어감을 단선적인 한 방향의 시간으로 보기때문에 늙어감에 때로 우울해진다. 그러나 시간에 대해 달리 생각하면 과거에 행복했던 찰나의 시공이 곧 현재의 행복이며, 그것이 또한 미래의 행복이 당도해 머무는 그자리일지도. 해서 이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마주하는 행복이 우주의 전방위 시공에 열려진 지점이리니.
이 영화에서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는 후반부에 UFO(쉘)가 사라지는 장면. UFO를 물질이 아니라 '기화되는 연기'로 표현한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외계인이 주인공 루이스와 이안에게 보낸 '표의문자' 메시지 역시 사라지는 '연기'였다. 인식 가능하지만 사라져 버리는 연기와 같은 존재 그리고 언어... 마치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을 SF적 상상력과 버무린 듯한 이 절묘한 장면에서 육신의 노화로부터 해탈감이 엄습했다. 기쁘다. 새로운 중년의 발견과 열림의 메시지가 내게 당도한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