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도시와 장소

소록도

開土_getto 2017. 6. 30. 23:00

06.30.금.

 

소록도에 다녀왔다.

현재 소록도 남쪽 해안가엔 90년대까지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다 폐기된 마을을 보존 정비하는 일이 진행 중이다. 이 작업을 맡은 이는 조성룡 선생. 언젠가 선생께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함께 가자고 제안하신 것.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순천역까지 가서 다시 차로 소록도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4시간 10분. 당일 일정으로 다녀오기엔 쉽지 않은 거리다.

 

소록도 현장은 현재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서생리 마을.

 

이곳은 1917년 최초의 한센병치료병원 '자혜의원'이 들어선 곳이다. 자혜의원을 중심으로 지역이 확장되면서 서생리에 관사가 들어섰고, 병사가 구북리와 남생리로 확장되었다.  그후 일제가 한센인을 대규모로 격리 수용하기 위해 전국의 한센인들을 소록도로 강제 이주 시킨 1933년 이후에 현재 국립소록도병원 본관이 위치한 곳에 치료 본관이 신축되었고 직원들의 관사도 이 지역으로 옮겨 갔다. 병원은 치료소가 아니라 인권유린의 격리 수용소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90년대 초까지 서생리 마을에는 한센인들이 살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생을 마감한 후 수십 년 동안 이 마을은 폐허로 묻혀졌다. 서생리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마치 남양군도의 전쟁 폐허를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조 선생님이 빙긋 웃으시며 "지금은 그나마 숲을 걷어내서 나아진 것"이라고...1930년대와 1970년대 지어진 벽돌 건물들이 버려진지 근 30년동안 붕괴되고 훼손된 채 밀림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구천을 떠돌고 있던 마을이 보존학 차원에서 정비되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재생 프로젝트가 아니다. 뒤덮은 밀림을 조심스레 핀셋으로 발라내 마을의 켜와 건물의 윤곽을 찾아내고, 거기서 나온 목재, 기와, 벽돌 등 폐기물들을 고스란히 재활용했다. 예컨대 부서진 벽돌로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잘게 조각낸 우드칩으로 길을 깔았다. 또한 자연 붕괴과정이 진행 중이던 건물 구조는 비계대로 받쳐져 시간을 동결시켰다. 신축 공사장에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다가 사라지는 강관 파이프가 치료의학 차원에서 건물 구조를 보강해 보존 처리하는데 사용되었다.

 

서생리 마을을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한국 도시디자인의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프로젝트라고... 더 이상 생의 중력을 견딜 수 없어 오래 전에 주저앉아 파묻힌 사람들과 건물의 여한(餘恨)을 다시 중력을 거슬러 들어올리고, 소록도의 역사와 삶의 의미를 톺아보는 '치유의 건축'이라고 할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앞으로 한센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소록도 개발을 노리는 지자체와 업자들의 욕심과 광풍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소록도는 이번 서생리 마을처럼 공들여 섬세하게 보존하고 필요 이상으로 손대지 말아야 한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누군가의 비참했던 생의 아픔까지도 돈이 되게 사업하자는 잔인하고 무서운 세상이다마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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