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8.목.
5.18 37주년.
몇 해 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5.18 초청강연이 있었다. 광주의 도시정체성에 대해 말하면서 '무진의 안개'에 비유해 운을 떼기 시작했다. <한국도시디자인탐사> 광주편에 썼듯이, 그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김승옥의 소설 속 '안개'의 실체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 김승옥, <무진기행> 중 -
아무 연고도 없지만 내게 광주는 오랜 세월 누군가 주술처럼 걸어놓은 지역감정과 차별, 밀봉을 뚫고 언제나 기억되는 5.18 '화려한 휴가'와 그 책임자 규명..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남긴 '외상후 스트레스'로 구축된 이상한 도시경관 등.. 이 모두가 뒤엉킨 모습으로 다가온다. 도시는 마치 귀신이 내뿜은 입김처럼 모든 편견과 사건들이 다가와 안개 속의 초현실적 이미지처럼 꿈틀거린다.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희뿌연 광주의 안개...
오늘 5.18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9년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제창하고, 유족을 품어주는 모습이 중계되었다. 이와 함께 언론이 5.18 발포명령자와 책임소재로 전두환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광주에 신선한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걷힐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것인가. 좋은 징조다.
앞으로 광주가 부디 '무등정신'에 기초해 일상의 부조리를 걷어내고 시민 저항정신을 민주적 삶터의 디자인 언어로 전환해 바람직한 도시로 가꿔나가길 진심으로 빈다.
(사진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