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평론

한글

開土_getto 2017. 10. 19. 16:17

10.19.목.


지난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제5회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에 다녀왔다. 이 행사는 9월 15일 개막해 10월 29일까지 서울역을 비롯 시내 버스정류장과 네이버 커넥트홀 등 여러 곳에서 연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올해 타이포잔치의 주제는 '몸'. 안내문을 보면 "몸을 주제로 '교환, 연쇄고리, 유대, 전이성, 관계, 마이크로-커뮤니티, 개입, 대화, 틈, 사건, 이웃, 구체적 공간, 공간... 참여와 접속 등 다양한 사건과 현상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실험했다"고 한다. 타이포그래피 전문 비엔날레로서 문자언어의 사회문화적 접점을 찾기 위해 해볼만한 적절한 주제로 생각된다.  


옛서울역사에 마련된 본 전시장을 둘러 보면서 거대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들인 수고와 노력이 매우 컸고 전시 내용도 흥미로운 볼거리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일부 국내 디자이너 작품 전시에서 한글의 본질을 왜곡하고 정체성이 실종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예컨대 '쓰기의 연대기...' 전시실에 걸린 한 작품 설명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 설명문은 "한글이 한자문화권의 지정학적 특성상 한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 글자에 독특한 형상성을 부여한다"며, "북디자이너 정병규가 말한 한글의 특성으로서 '한글의 상형성'에 기초해 두 종류의 포스터에 한글의 이미지성을 드러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글의 문자적 특성을 저버리고 왜곡한 말이다. 마치 영화 <남한산성>을 본 것처럼 기분이 꿀꿀해 진다. 왜냐하면 한글이 '뜻글자 또는 표의문자'(Ideogram)인 한자와 달리 본질적으로 '소리글자 또는 표음문자'(Phonogram)이라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초딩도 아는 기본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음양 우주론에 기초해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고, 천지인의 원리가 조합되어, 기본음(ㄱ,ㄴ,ㅁ,ㅅ, o)이 발화하는 '소리의 구강구조 형태'를 형상화해서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한자의 영향을 받아 뜻글자의 모아쓰기 상형성을 모방한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따라서 타이포잔치에서 표명한 전시 설명문은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을 왜곡한 몰역사적인 것으로 행사의 목적을 의심케 한다.


이러한 왜곡을 접하면서 흔히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이 시도하는 읽혀지지 않은 이상한 한글 디자인의 원인을 알게 된다. 한글 디자인의 본질인 '발화와 소리의 형태'가 한 몸을 이루지 않기때문이다. 따라서 '발음되어 읽혀지지 않는' 조형중심적 또는 상형적 한글 디자인은 한글의 본질을 저버린 '가짜 한글 디자인'으로 '한자식 한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자식 상형성'에 포로 또는 노예가 된 한글을 해방시켜야 한다. 읽혀져 소리나지 않는 껍질뿐인 한글은 가라! 그것이 마치 새롭고 멋진 한글 디자인인 것처럼 왜곡하는 한국디자인의 세태에 대해 분별력이 생겨나길...


또한 전시장에는 누군가 자신의 정체성을 혼동했는지 한글에 일본 에도문자를 적용해 일본을 '태양의 낙원'으로 묘사한 디자인도 버젓이 걸려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제작된 포스터가 아니다. 국내 천안에 소재한 모 대학 디자인과에서 왜 한글에 에도문자의 탈을 씌워 일본을 '태양의낙원'으로 찬양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 왜? 말문이 막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한민국은 해방된 나라가 아닌 것 같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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