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0.토
법무부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간주해 몰수했던 화가 신학철 선생의 그림 <모내기>를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 보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에 내가 만감이 교차할 정도이니 정작 당사자는 오죽하랴. 그러나 법무부가 선심 쓰는 척 관람도 시키지 않을 그림을 달랑 위탁보관하면 뭐하는가? 어차피 훼손시켜 버린 그림. 더구나 피해 당사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마음의 상처는 누가 어떻게 보상하련가.
지난 2000년 <디자인문화비평 3호>에서 나는 신학철 선생과 그의 <모내기> 그림 사건을 별도기획 특집으로 집중 조명한 적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검찰이 <모내기>(1987) 그림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1989년에 구속기소한데서 시작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1999년 대법원은 <모내기>를 이적표현물로 규정하고 신 선생에 대해 징역 10월의 선고유예와 그림을 몰수한다고 확정했다. 대법원이 인용한 검찰측 기소의견은 어이없게도 평소 미술평론이나 미술품 감정 등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남파 간첩' 홍종수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내기>의 그림 위쪽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지상의 낙원처럼 북쪽사회를 묘사한 것이고, 아랫쪽은 쓰레기를 거둬내는 모습으로 이는 마치 남한사회에 대한 체제전복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림의 윗부분이 북쪽이고 아래가 남쪽이라는 방위표시는 아무 근거가 없는 독단적 편견이며, 오직 남파 간첩의 눈에 비친 이른바 '뭐 눈에는 뭐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관점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검찰은 그림을 증거로 보존한다고 차곡차곡 접어 A4 서류봉투에 넣어 검찰청 창고에 보관해 훼손시켰던 것.
2000년 5월 4일 신학철 선생은 변호인 조용환 변호사를 통해 'UN인권이사회'에 제소했다. 내용은 "<모내기>에 대한 유죄판결은 한국이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UN인권규약(B규약) 19조를 위반했다"였다. 이에 UN인권이사회는 '작가에게 그림을 반환하라'고 권고했지만 최근까지도 정부는 묵살로 일관해 왔었다.
한편 당시 유엔에 제소된 시점에서 <디자인문화비평>의 편집자로서 나는 이 사건의 사회문화적 중요성을 별도 기획으로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해서 이 특집에서 쓴 글이 "시각문화의 모내기"와 "신학철 선생과의 인터뷰: 본능의 미학"이었다. 내가 이 사건에 분노했던 것은 당시 <모내기> 그림 사건이나 나의 부당해직 사건 모두가 한국사회에서 제도적 폭력에 의해 예술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가 유린당한 동시대적 자화상으로서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내기>는 지난 과거의 그림이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초미의 화두로 진행중인 '적폐청산'의 또 다른 은유에 해당한다. 적폐청산 모내기.
부정과 부조리를 걷어내고 부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모내기'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