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8. 목.
월간지 <해리티지 뮤인, Heritage Muine> 10월호에서 최근 1차 마무리된 소록도 서생리 마을 보존을 상세히 다뤘다.
"소록도 섬마을"...
삶의 여한과 중력...기억과 치유...존재론적 무게감이 이토록 사무치는 곳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 지난 6월말에 소록도 다녀오며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글을 실었다.
"이승과 저승 사이: 조성룡의 소록도 치유의 건축"
이승과 저승 사이:
조성룡의 소록도 치유의 건축
김민수
서울대학교 디자인역사문화전공 주임교수
최근에 필자는 보존 작업이 1차 마무리된 소록도 서생리 마을을 조성룡 선생과 함께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처음 본 그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수십년간 자연 붕괴과정을 거쳐 ‘밀림 속 폐허’가 되어버린 저승의 집들과 마을이 다시 이승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았다.
서생리 보존계획은 요즘 전국의 도시 곳곳에 오남용되고 있는 ‘도시재생’의 흔한 수법적 수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것은 재생이 아니라 ‘죽음’에 개입해 시간을 동결(frozen)’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던 집들을 건축보존학 차원에서 정비했기 때문이다. 뒤덮은 밀림을 조심스레 핀셋으로 발라내 집의 윤곽과 마을의 켜를 찾아내고, 모든 건축적 재료는 그곳에서 나온 목재, 기와, 벽돌 등 폐기물들을 고스란히 재활용했다. 예컨대 부서진 벽돌로 벤치를 만들고, 나무를 잘게 조각낸 우드칩으로 길을 깔고, 심지어 집 옆에 나뒹굴던 빈 소주병조차 버리지 않고 모두 보듬었다. 또한 붕괴된 집의 구조는 비계대로 받쳐져 시간을 동결시켰다. 신축 공사장에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다가 사라지는 강관 파이프가 치료의학 차원에서 구조보강과 보존처리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동안 의재미술관을 비롯해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선유도공원 등에서 보듯, 조성룡의 도시건축적 화두는 ‘장소와 사람 혹은 풍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방식에서 빛을 발해왔다. 언젠가 필자는 그의 건축관을 일컬어 “냉철한 현대 건축의 언어로 사람과 생태와 풍경이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중재하는 것”이라며, 그를 도시의 폐허 속에서 한 줄기 인간의 희망을 구하는 ‘잠입자’에 비유해 말한 적이 있다(졸저, 『필로디자인』, 415쪽). 내 마음 속에 조성룡 선생은 마치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처럼 폐허가 된 도시와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가 본적이 없는 ‘금지된 구역’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친절한 잠입자’로 새겨져 있다. 그는 건축가 자신의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그런 유형의 건축가가 아니다. 대신에 그는 언제나 우리를 구역으로 데려가 도시의 폐허 속에서 희망을 보여준다.
어쩌면 조성룡의 서생리마을 보존작업도 그동안 그의 행보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안내한 ‘구역’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론적 무게감과 밀도감으로 다가온다. 그가 그곳으로 안내한 이들이 서생리 집들을 보고 너무 놀라서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집의 역사적 기억이 지닌 삶의 무게, 곧 실존성과 무너져 내린 집들이 감당해 온 중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번 서생리 마을보존이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혼의 시술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더 이상 생의 중력을 견딜 수 없어 오래 전에 주저앉아 파묻힌 한센인들과 집의 여한(餘恨)을 다시 중력을 거슬러 들어올리고, 소록도의 역사적 기억과 삶의 상흔을 톺아보는 '치유의 건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