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리에쥬' 극장 로고(왼쪽)와 2020 도쿄올림픽 엠블렘(오른쪽)
(사진 출처: 해럴드 경제 9월 2일자)
일본 사회가 심상치 않다.
일본인들은 자기표현에 늘 신중하고 조용하다. 그런 이들이 최근 아베 총리의 안보법안 강행에 반대해 10만이 넘는 대규모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론을 무시하고 법안 통과시키려는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가 극에 치닫고 있는 것.
이 와중에 한 국가의 문화적 역량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올림픽 디자인이 표절로 편명되어 폐기되는 막장사태가 발생했다. 사노 겐지로가 디자인한 2020년 도쿄올림픽 엠블렘이 벨기에 디자이너의 '리에쥬' 극장 로고를 표절한 것으로 판명되어 일본 국민의 분노가 아베급 이상으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듯하다. 언론에 따르면, 원작자인 그래픽 디자이너 올리비에 데비가 엠블렘 사용의 취소에도 불구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상대로 제소절차를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고 한다. 그가 실제로 제소를 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일본을 믿고 함께 춤췄던 IOC가 스스로 신뢰에 똥칠하고, 세계적 후원 기업들이 줄줄이 망신 당할 판이다. 그러나 꼼수의 천재 일본은 언제나 늘 그래왔듯이 어떤 방식이든 사태를 무마해 수습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 표절로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일일까?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졸저(<21세기디자인문화탐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디자인은 '한 사회의 문화적 상징'이다. 디자인은 특정 사회가 품고 있는 '정신과 철학의 집약체'이자 문화의 내적 상태를 가늠하는 '진맥점'이다. 따라서 문제의 디자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소 재개에 따른 국민적 공포와 저항에 이어 극한으로 치닫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아베의 안보법안 강행 등 오늘날 '흔들리는 일본 사회'의 '정신 상태'을 보여주는 '징후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사노 겐지로는 마치 안보법안이 통과되면 자위대 활동범위가 세계로 확대되어 마음대로 전쟁을 감행할 수 있듯이 벨기에 디자이너의 극장 로고 위에 멋대로 일장기의 히노마루를 꼽아 놓아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 망상을 한 것은 아닌가.
사실 이는 문제의 디자이너를 놓고 볼 때 지나친 확대 해석으로 비쳐질 수 있다. 사노 겐지로는 표절 문제가 불거지자 애초 디자인한 원안이라는 것을 공개했는데, 어이없게도 몇해 전 도쿄에서 개최된 20세기 초 독일 신타이포그라피의 주창자 얀 치홀트의 전시회 로고를 표절한 것이었다(허핑턴포스트코리아, 9월1일자). 더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사노 겐지로가 직접 공개한 도쿄올림픽 엠블렘 응모 원안 (사진출처: 허핑턴포스터코리아, 9월1일자)
2013년 11월 도쿄에서 개최된 <얀 치홀트 전시회> 도록 표지 디자인(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9월1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막장 사태가 현 일본 사회의 맥락과 매우 절묘하게 맞물려 읽혀지는 부분이다.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이벤트를 위해 남의 나라 디자인을 표절했는데도 당사자와 일본 올림픽조직위가 피해자인 올리비에 데비는 물론 분노하는 일본인과 실망한 세계에 대해 정식 사과 조차하지 않고 얼버무려 슬그머니 엠블렘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작태는 남의 나라를 침략해 날로 삼킨 전범국으로서 통렬한 자기반성과 사죄없이 다시 세계 제패의 헛꿈을 꾸고있는 아베 정권의 망상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이런 이유로 이번에 폐기된 막장 엠블렘은 현 일본 사회의 정신상태를 대변하는 상징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정부가 일본에 대해 역사 왜곡을 시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사과하라고 겉으로는 시늉하면서 정작 국내에선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반성해야할 대목을 삭제 및 축소하고,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호도해 획일화된 전체주의식 역사관을 교육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제(9월 2일) 서울대 역사관련 교수들과 초중고 교사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화는 헌법정신에 어긋나고 교육의 본질에도 어긋난다고 국정교과서 강행 '불복종 운동'에 나서기로 선언했다.
이는 역사교과서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정립해 나가야할 한국 디자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의 정체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다. 모든 디자인된 존재방식은 그것이 도시, 건축, 조경, 제품, 시각물, 옷 등 종류에 상관없이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고, 그 의식은 다시 존재방식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자기-재생산(self-reproduction)적이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말이다.
디자인이 곁에 차고 넘쳐도 정신이 살아 있는 한국 디자인이 그립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회에서 좋은 디자인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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