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1. 토.
주말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애마 몰고 홀로 떠났다.
경기북부 쪽의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해서 좀 느즈막히 출발하기로.
9::30 열선 장갑까지 챙겨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
오늘 투어는 3번 국도타고 철원 끝까지 올라가 월정리전망대 앞과 노동당사 지나 김화 방면 거쳐 43번-37번-1번 타고 돌아오는 코스. 가는 길에 얼마전 지인이 다녀온 연천 재인폭포 보고 김화에서 점심하기로.
1번 국도 타고 문산 방면으로 올라갔다.
토요일 오전에 문산에서 전곡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는 거의 아우토반. 한적해서 좋다. 예측한대로 문산 지나면서 손이 시려 열선장갑에 전원 넣고. 주행 중 손이 따뜻하면 만사가 느긋하다. 산천 유람 모드로. 한탄강변 캠핑장으로 많은 차들과 가족들이 주말 캠핑을 위해 나들이 나왔다. 반면 전곡리 선사유적지 쪽엔 주차장에 차도 없고 인적이 드물어 썰렁하다.
연천 재인폭포의 18.5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요즘 늦가을 비가 많이 내려 가물었던 폭포도 신이난 모양이다.
강화유리로 바닥처리한 전망대는 폭포 바닥면까지 꽤 아찔한 분위기다. 옆에 층계도 있어 폭포 바닥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전망대와 계단 구조물은 자연경관에 대한 인간의 욕심이지만 지자체 디자인 치고는 모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겨울의 초입에 철원과 김화 일대를 주행풍 맞으며 바이크로 달리다보면 묘한 정취가 스쳐 지나간다. 경계없이 들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철새들이 더욱 부러워지는 곳. 특히 3번 국도 백마고지역을 지나 대마사거리에서 월정리 전망대로 향하는 검문소 왼편의 '463'번 도로는 북쪽으로 끊어져 있다. 갈 수 없는 길... 죽기 전에 그곳을 바이크로 달릴 수 있을런가..
빛바랜 노동당사 앞 도착. 잠시 쉬고.. 예전에 이곳에서 통일음악회하며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때가 고조선 때인지 먼 옛날 구전설화처럼 아득하다. 노동당사 돌아 나오면서 인근 도피안사에 잠깐 들릴까 하다가 그냥 통과. 신라 때 명문이 새겨진 철조비로자나불은 안녕하신지. 예전에 안상수 선생이 도피안사 주련을 한글 타이포그라피로 만들어 전시한 적이 있었지.
재인폭포와 노동당사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가서 점심 먹을 수도 없고 미식가인 지인이 감탄한 김화 학포리 해물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2:04 김화읍 학포손칼국수 도착. "혼자 왔는데 식사 가능해요?" 물었더니 주인 영감님께서 "드려야지요." 하시며 순순히 주문을 받아준다. 지난번에 지인이 혼자 왔다고 하니까 1인 식사는 어렵다고 해서 사정해 먹고 왔다고해 약간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솔로 라이딩은 먹는게 고생이다. 특히 맛집들은 1인 식사에 야박하다. 다행히 2시 넘어 한창 손님이 밀리는 점심 때가 아니라 자리가 여유가 많다. 좁은 식당 복도에 따뜻한 연탄 난로와 연통이 정겹다. 벽을 보니 영업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헉..조금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헛걸음했을 뻔.
음식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역시 맛집은 맛집. 굴, 홍합, 조개 등 해물을 잔뜩 넣어 끓인 국물에 시금치로 만든 녹색 국수가 쫄깃한게 별미. 겉절이와 깍두기가 찰떡궁합. 다만 해물칼국수가 싱겁게 먹는 내 입에는 약간 짜다. 그래도 시장했던 터라 폭풍흡입..
배가 든든하니 세상이 다시 아름답게 보인다. 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43번 국도를 여유롭게 타고 내려와 37번으로 갈아탔다. 여기서 '여유롭게'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43번 타고 내려오다가 운천 제2교차로까지는 정말로 여유로왔다. 문암리로 빠지는 78번 도로를 타고 전곡 방향으로 웜홀 이동을 하려 했다가 생고생하고 다시 43번 국도로 되돌아 와야 했다. 이 때문에 30여분이 날라갔다.
78번은 첩첩산중에 도로 공사중인 구간이라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 때가 있다. 가지 말아야할 길을 갔다가 개고생하는...그 길이 고생길이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적어도 느낌으로 가지 말아야할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명이 어디론가 끌고가는 길이 있다. 이런 때는 그 어떤 요령도 통하지 않는다. 그냥 감내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잘 견뎌야 한다. 시간에 몸을 맡기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영양가있는 좋은 경험으로 인생을 더 찰지게 만든다. 이럴 때 쓸데없이 조급해 하거나 성질을 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길이 없는 길을 한참을 가다가 비포장길에서 유턴하면서 조심조심 43번 국도로 돌아왔다. 투어러급 바이크는 비포장길이 쥐약이다. 무게가 350kg이라 자칫 삐끗하면 속수무책으로 자빠질 수 있다. 거의 빠져나올 무렵 아까 갔던 길에서 비록 짧은 구간이었지만 운치도 있었다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남들 가지 않는 길을 씩씩하게 혼자 갔다가 내 인생이 크게 꼬였을 때도 그랬듯이... 후회는 없다. 나를 단련시켜 준 그들과 세상에 감사할 뿐. 돌이켜보면 내게 열정이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힘들어 하던 때 어떤 분이 기운내라고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열정'의 영어 단어 'passion'은 '수난'을 뜻하기도 한다고..
운정 신도시 지나 일산 덕이동 지나면서 할리데이비슨 일산점에 잠깐 들러 타이어 공기압 체크하고..
어느덧 날은 어두워지고
7시경 집에 도착.
오늘 총 주행 307.4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