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도시와 장소

통감(痛感)

開土_getto 2016. 2. 16. 23:30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로 가려졌지만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조선총독부의 발판을 마련한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이듬해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어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해방 후 안 의사의 유해도 수습하지 않은 나라에서 그의 사형선고일까지 기억하는 것은 무리겠지... 

해서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을 수행한 통감관저의 실제 위치를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 하다.


통감관저는 1905년 강압적 허위조작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에 따라 1906년 남산에 세워졌다. 그곳은 현재 교통방송국에서 서울유스호스텔 올라가는 길목에 해당한다. 최근에 와서야 터의 위치가 확인되어 표지석이 세워졌다. 단서가 되었던 것은 옛 사진 속 통감관저 앞에 있던 커다란 은행나무. 몇해전 한 사학자에 의해 이 은행나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건물과 함께 기억이 사라졌어도 400년된 은행나무가 그곳에 관저가 있었음를 증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가면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부셔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동상대가 세워져 있다. 원래 하야시 동상은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요해 병탄의 발판을 닦은 공으로 그에게 남작 작위를 주고 통감관저 앞에 세워졌다. 동상의 이름은 '남작하야시곤스케군상'(男爵林権助君像). 이를 보고 있으면 허탈해 진다. 동상대를 거꾸로 세워 하야시를 욕보여본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친듯 역주행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어이상실 뻘쭘할 뿐...


가려진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이렇게 나마 기억해 본다.

내가 안중근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숭배와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불의에 항거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한치의 흔들림 없이 의연했던 그의 '성의있는 삶'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김민수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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