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그날그날

환전

開土_getto 2016. 5. 27. 15:12

영국 출장 준비하면서 환전.

파운드화는 환전하기 좀 번거롭다. 은행에 알아보니 달러와 유로화 등의 환전은 일반 지점 어디에서나 가능하지만 파운드화는 경우에 따라 지점에 없을 수 있어 먼저 확인하고 가야한다. 또한 속설에 영국 일부 지역에서는 구권을 받지 않기때문에 가급적 신권을 확인해 환전하는게 좋다는 말도 있다.



한번도 사용된 적 없는 빳빳한 새 돈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팔락거리는 촉감과 냄새... 예전에도 사용했지만 다시 찬찬히 훑어 본다. 화폐는 나라의 얼굴이다. 모든 파운드 화폐 디자인은  전면에 입헌군주제 국가답게 공통적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과 왕궁 이미지를 주요소로 삼았다. 각 단위마다 지폐 크기와 색상을 달리하고, 뒷면에 역사인물들을 달리 배치해 구분했다.


50파운드짜리 화폐는 붉은색이 주조색이다. 뒷면에 산업혁명의 종주국으로서 증기기관을 개발한 와트(James Watt)와 볼튼(Mattew Boulton)의 초상화를 담았다. 처음에 와트의 증기기관 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한동안 진행이 중단되었는데 자본가 볼튼의 후원으로 다시 추진되었던 것. 이로써 1775년 최초의 상업용 증기기관이 완성될 수 있었다. 50파운드는 이들의 기술력과 협력을 통해 가능했던 영국의 산업혁명과 기술의 역사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20파운드 화폐의 주조색은 보라색이다. 뒷면에는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뭔가를 상상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그가 <국부론>에서 말한 이른바 핀(pin) 이론을 예시한 삽화다. 그는 노동이 분화되면 생산량을 증대시킨다고 핀 제조 생산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한 명의 노동자는 하루에 한 개의 핀을 만들기도 힘들지만 10명의 노동자가 공정을 나눠 각각 전문성을 익히면 하루에 12파운드의 핀, 곧 4만 8천개의 핀을 만드는 효과를 얻게된다는...따라서 20파운드 화폐는 경제와 노동생산의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10파운드짜리는 주황색과 노란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했다. 뒷면에는 찰스 다윈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오늘날 현대과학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진화론이 과학이론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약육강식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였음을 말하고 있다. 과학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5판운드의 주조색은 청색과 녹색이다. 뒷면에 사회개혁가 엘리자베스 프라이(Elizabeth Fry)와 그녀가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녀는  은행가 집안의 부유한 태생이면서도 퀘이커 교도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기위해 병원과 수감시설 등의 개선을 위해 애쓴 인물이었다. 영국 중앙은행은 2017년에 10파운드 화페에 들어간 찰스 다윈의 초상 대신에 역사 인물을 '오만과 편견'의 저자인 제인 오스틴으로 교체한다고한다. 이는 2017년에 5파운드에 들어가 있는 엘리자베스 프라이를 윈스턴 처칠로 교체하는데 따른 사회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져 있다.




어쨌거나 영국의 파운드화에 담겨진 초상들은 산업혁명기 엔지니어와 자본가, 경제학자, 생물학자, 사회개혁가, 여성작가 등 오늘날 현대 영국 사회 형성에 기여한 인물들인 것이다. 이번 출장길에 이들을 어떻게 알차게 맛있게 써먹을까 궁리하다가...


또 한국 화폐 생각이 들었다.  화폐 속의 인물들은 아직 근대는 고사하고 거의가 전근대적인 조선시대 인물들로 사회적 맥락이 빈약하고 인물 자체의 실재감과 존재감이 없어 관련성이 기운생동하지 않는 죽은 도상들이다. 더구나 화폐 초상이 실제 인물과 무관하게 화가가 자신의 얼굴이나 그려넣거나 대부분 친일미술가로서 기회주의자들이 그린 것들이다. (블로그에 게시한 '한국화폐의초상과 기억의 죽음' 참고바람).


나는 한국사회에서 화폐 디자인이 바뀌고 정신이 소생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도 의미있고 가치있게 변화할 것이라 본다. 화폐 디자인은 그 정신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이기에... 




김민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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