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979년 김재규가 유신정권의 심장에 총을 쏜 날이자,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날.
얼마전 우당 이회영기념관 '벗집'(아호 '友堂'의 우리말)에 갔다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사용했던 것과 동종의 실물 브라우닝 권총을 봤다.


사직동 우당 선생의 흉상과 이회영기념관 (Ⓒ 김민수, 2025)

우당 이회영 선생 (소장: 이회영기념관)
이회영기념관은 1910년 국권이 침탈되던 그 해 우당 선생을 비롯 6형제 일가 모두가 가산을 정리하고 압록강 건너 서간도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봉오동 청산리 전투 등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위한 고난의 여정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원래 남산 자락에 있다가 2024년 사직동 임시거처로 옮겨왔다 (곧 남산 자락으로 다시 이전할 계획).
안 의사가 사용한 동종의 브라우닝 권총을 보면서 피가 끓어 오른다. 단순히 안 의사의 거사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그를 기념한다고 만들어 놓은 '아무 감흥이 없는 넋나간 동상들' 때문이다.

친일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안 의사상, 1959
처음에 안 의사 동상을 제작한 자는 대표적 친일조각가, 김경승. 그는 남산에 백범 김구 동상도 제작해 암살자 안두희에 이어 백범 선생을 두 번째 살해했다.
안 의사 동상은 애초에 1959년 서울 숭의여고 앞에 세워졌다가 1967년 4월 남산 공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동상은 양복과 코트 차림에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의거 당시의 순간과 인간 안중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김경승에게 안 의사는 아무 의미없는 존재였던 것.
그러더니 2010년 10월 24일 안의사 동상을 새로 교체하면서 이번에는 마치 먼지 털어내 듯 겉옷을 벗어 들고 흔드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동상의 꼴은 사선을 넘어가는 인간 안중근의 결연한 순간과 거사 자체에 대해 아무런 기억을 담지 못한다.

2010년 교체된 안 의사 동상, 남산공원, 2010.10.24 (Ⓒ 김민수, 2012)

2010년 교체된 안 의사 동상, 남산공원, 2010.10.24 (Ⓒ 김민수, 2012)
이런 이유로 안 의사 동상은 반드시 다시 교체되어야 한다.
하얼빈역에서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국권침탈의 수괴를 겨눠 6발 방아쇠를 당기며, 사선을 넘어가는 안 의사의 결연한 결정적 순간의 모습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올 때 한국사회에서 일본 밀정들이 사라지고 진정한 해방과 나라의 정신이 온전해질 것이다.
그날이 오길...
(참고로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고 있는 안 의사의 결연한 마지막 순간이란 이 블로그 필자의 글, <동상>에서 언급한 서울역 앞 '왈우 강우규' 의사상을 참고바람.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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