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개정판에 들어갈 사진을 교체할겸 아내와 함께 독립기념관에 다녀왔다. 휴일 나들이 차량으로 정체될 것이 뻔한 고속도로로 운전하기 싫어 편리한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용산에서 탄 1호선 천안행 급행 지하철이 편안하게 1시간 30분만에 천안까지 데려다 주었다.
도착 시간이 점심 때와 맞물려 식사부터 하러 병천에 먼저 갔다. 가는 날이 장날. 마침 1일이 진짜 장날이라 아우내 장터엔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변이 온통 순대국집인 이곳에서 모든 집이 다 맛있는 건 아니다. 맛집은 따로 있다. 유독 줄을 서서 기다려서 먹는 집이 한 곳 있다. 이 가게는 순대국 냄새를 없애 국물이 맑고 순대의 식감이 남달라 줄을 서서라도 먹겠다는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입구 계산대에는 "주말과 휴일엔 식재료가 부족해서 포장이 불가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 줄서서 조금 기다렸다가 식사했는데 입소문이 틀리지 않았다.
식사 후 장터를 둘러보고 독립기념관 내에 '조선총독부철거부재' 공원으로 향했다. 여기는 지난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기념한다고 철거한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나온 부재들을 쓸어 모아 공원으로 재구성한 곳이다.
이곳엔 총 17종 2,400 톤의 총독부 건물 철거 부재가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안내문이 밝힌 공원 조성에서 강조점은 "민족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연출 전시할 목적으로 높이 8.5미터 짜리 첨탑을 지하 5미터 깊이에 매장해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무슨 민족의 자긍심인지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방불케 한다. 원형극장 한 가운데 '잘 모셔놓고' 감상하게 되어 있는데 왜 굳이 '매장'했다고 하는지도 의아하고. 좀 더 윗쪽으로 올라가면 둥근 원형으로 바닥을 조성하고 위에 잡동사니 철거 부재들을 늘어놓았는데 안내문에는 우습게도 이것들을 '홀대하는 방식'으로 전시했다고 표기되어 있다. 철거 부재로 고대 유적지를 만들어 놓고 민족 자긍심을 느끼게 홀대하는 방식이라고... 이 공원 조성의 발상과 수법은 한마디로 '유치하고 낭만적'이다.
또 다른 안내문에 표기된 "석양을 상징하기 위해 독립기념관 서쪽에 위치시켜 식민지 시기의 진정한 극복과 청산을 위치 설계했다"는 이 공원에서 과연 그 무엇이 극복되거나 청산되었는지 모르겠다. 단지 고대 유적지스러운 정취만 전해주는 볼거리일뿐.
애초에 건물의 상투와 부스러기들을 이렇게 쓸어다가 낭만적 장소로 재포장할 것이 아니라 총독부 건물 자체를 이전시켜 산채로 증언하게 했어야 했다. 현 용산전쟁기념관을 새로 지을 것이 아니라 총독부 건물을 통채로 옮겨 침략과 전쟁을 철저하게 교훈으로 삼는 장소로 사용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침략의 생생한 증거를 자발적으로 지워버리고 무슨 극복이요 청산인가.
옆에서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런식으로 청산할 것이면 차라리 가루로 만들어 없애버리던가..."
결국 철저하지 못한 역사가 어설픈 세월을 뚫고 다시 망령들을 부활시키고 있다. 역사학계와 국민여론도 무시한채 친일과 독재의 역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그 댓가로 이 중요한 시기에 후진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요즘 아베정권과 그 이웃들이 비웃고 있을 이 유치하고 순진한 망각의 장소에서 노래 제목이 떠올랐다. 마티아스 괴르네가 부른 슈베르트 가곡 1집에 수록된 첫번째 가곡 D.526번 '지옥으로 떠나는 길'(Fahrt Zum Hades)과 다음의 D.700번 '자발적 망각'(Freiwillinges Versinken)이...
ⓒ 김민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