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디자인역사문화

도시와 장소

답사

開土_getto 2015. 11. 5. 00:02

11월 4일 수요일.

학부 디자인사 강의를 덕수궁과 정동 일대에서 진행했다. 중간시험 전에 끝낸 20세기초 바우하우스까지 서양 근대에 이어 새로 시작하는 한국근대편 관련 답사. 쌀쌀하던 날씨가 다행히 따뜻해져서 산책하기에 적당했다. 학생들과의 교감도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람찬 수업이었다. 늘해온 수업 코스지만 오늘은 유독 요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덕분에 더 열심히 꼼꼼히 가르쳐야겠다는 사명감과 의욕이 샘솟는다.

 

학생들이 약속 시간에 잘 맞춰 덕수궁 중화문 앞에 모두 모였다. 출석 확인하고 답사 시작. 이동하기 전에 먼저 덕수궁과 정동 일대의 역사적 유래와 맥락을 개괄했다, 또한 오늘 시간상 동선에서 제외했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성공회 대주교좌성당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덕수궁에서 시작해 러시아공사관터에서 마무리.

 

화창한 가을날 시내 한복판에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답사하면서 학생들의 표정은 위조된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에서 어두워졌지만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말하듯 일제식민 지배가 축복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능성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듯 했다. 선택의 여러 가능성을 스스로 팔아넘긴 역사의 결과가 도시경관, 건축, 디자인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체감하는 계기가 되길 빌며... 답사를 마치고 러시아공사관터 아래 긴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확인한 근대 역사의 출발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어긋났는지 성찰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각오를 다지자고 강조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대체로 강의실에서 학습한 역사를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 의미있고 좋았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그동안 근대 역사는 연결되지 않는 파편적 조각들처럼 느껴졌었는데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가르친 보람을 주는 고마운 말들이다.

 

이에 나는 그들을 격려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생체에너지를 세상에 전이시켜 교감하는 일"임을 상기시키고 "오늘 보고 느낀 여러분들의 체험이 역사를 모르는 디자이너들과 언젠가 구별짓는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동일한 대상을 같은 조건에서 디자인을 해도 다른 디자인이 나오는 것은 바로 경험과 사고의 차이 때문이기에...

 

오늘 따라 학생들의 눈빛과 표정이 강의실에서 보다 훨씬 살아 있다. 이 나라에 아직 희망이 살아 있다는 징조다. 그 눈빛들을 더욱 초롱초롱하게 살아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답사 수업 모두 마치고 대학원 전공생들과 연남동에서 만나 저녁을 같이 했다. 지난 10월 연례전시회 마치고 뒷풀이 자리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오늘 풀기로 한 것. 저녁 장소는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작은 남미 파라과이 음식점이었는데 메뉴는 낯설어도 맛은 익숙하다. 특히 주문한 음식 중 '엠빠나다' 세트는 튀김 만두와 같고, '푸체로'는 육수에 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토마토 스튜였다.

 

식후 자리를 옮겨 골목 안에 장농속 같은 작은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평일이라 주위 테이블이 텅 비어 있어 바 전체를 전세낸 듯 웃고 떠들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호흡한 하루. 몸은 좀 고되지만 보람이 있어 좋다.  

 

 

김민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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